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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불면ㅣ심사 그리고 폭우 본문

일상

불면ㅣ심사 그리고 폭우

달빛사랑 2020. 8. 1. 20:49

내일, 아니 오늘 10시, 모 연극제 심사 가야 하는데, 오랜만에 대사를 얻은 무명 배우처럼 잠이 안 오네. 서너 달 전, 후배 이찬영이 준 연극 소품 같은 고량주를 거푸 두 잔 마시고, 배경음악 같은 음악을 서너 곡 들어도 달아난 잠은 도무지 돌아올 생각을 안 하는군. 명정(酩酊) 상태에서 연극 속 비련의 주인공처럼 잠이 들곤 해서 그런가. 비가 금방 이곳에 닿으려는 조짐인가. 다만 술기운은 약간의 시차를 두고 찾아오는 법이니 희망을 버리진 않고 있지만. 본래 잠은 많지 않아, 4시간만 잘 수 있다면 하루를 버티는 건 일도 아닌데, 앞으로 30분 안에 부디 잠들 수 있기를 기원하며, 햄릿처럼 독백해 본다. “자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아울러 이 시간, 의지와 무관하게 잠 못 이루는 모든 동종(同種)의 불면족들에게 연민을 섞어 연대의 인사를 보낸다. 지금 시각 새벽 3시 40분.

 

힘겹게 두어 시간 잠을 자고 일어나 간단하게 죽을 먹고 심사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연극제 심사 장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아끼는 우산을 잃었다. 종일 비가 내릴 것 같아 정거장 앞 편의점에 들어가 비닐우산을 구매했다. 내 돈을 주고 우산을 사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아깝기도 했지만, 뭔가를 차에 두고 내린 일이 처음이라서 마음이 복잡했다.

 

심사장소에 도착했을 때, 주변 환경의 열악함에 약간 짜증이 났다. 날은 습한데 에어컨도 없는 연습실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나중에 관계자가 와서 심사장소인 협회 사무실로 이동했는데, 이번에는 영상 장비가 작동하지 않아 말썽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공연 영상으로 심사를 해야 했는데, 40분으로 압축된 영상으로 과연 해당 작품의 장단점을 정확히 변별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조건을 탓하며 심사를 미룰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악조건 속에서 두어 시간 영상을 시청했고, 도시락으로 점심을 한 후 1시간가량 심사위원 간 의견을 조율하여 마침내 대상작을 선정했다. 이 작품과 해당 극단은 대한민국 연극제에 인천 대표로 참가하게 될 것이다.

 

두 시가 조금 넘은 시간, 작품을 출품한 극단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심사평과 대상작을 발표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힘겹게 작품을 만들어 출품한 극단 대표 앞에서 결과를 발표하는 일은 무척 곤혹스러운 일이다. 두어 명 아는 감독과 눈이 마주쳤을 때는 이런 식의 절차를 준비한 협회 측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회관을 나와 전철을 타러 가다가 함께 심사했던, 서울서 내려온 박 모 선배, 극단 ‘지금’의 이 모 대표와 제물포역 앞에서 커피를 마셨다. 이 대표 얘기를 들어보니 협회 안에 심각한 내홍이 있는 모양이었다. 전임 협회장이 불명예 퇴진했고, 회원들도 회장 지지파와 반대파 사이에 감정적 골이 깊다고 했다. 사정을 들어보면 결국은 돈 문제였다. 예술가 조직에서 이런 종류의 추문이 자꾸 발생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남의 단체 일에 왈가왈부하기는 싫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카페를 나와 박 선배는 인천에 내려온 김에 지인들을 만난다면 동암역으로 향했고 이 대표와 나는 갈매기로 이동했다. 도착했을 때, 혁재가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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