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희한한 외출, 안 해도 될 뻔했던 지출 본문
금요일, 술꾼들에게는 위험한 유혹의 시간이 도사리고 있는 날, 우수홍 선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인천일보 원고 마감이 월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시작조차 않고 있었기 때문에 다소 부담이 됐지만 결국 기어나가고야 말았다. 예정된 수순에 다름 아니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도시의 거리는 6시가 넘었는데도 푹푹 열기를 내뿜었다. 전철역 근처에서 일군의 학생들이 내 앞으로 땀 냄새를 풍기며 우르르 지나갔다. 얼굴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는데 뭐가 그리도 좋은지 연신 웃어대며 걸어갔다. 더위 따위가 결코 훼손할 수 없는 엄청난 에너지와 생동감을 가지고 있는 젊음을 보았다. 부러웠다.
금요일의 주점 갈매기는 무척이나 붐볐다. 앞뒤와 옆자리에 모두 아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우수홍 선배를 만나러 갔는데 정작 우 선배는 그곳에서 만난 또 다른 옛 노동운동 동지와 합석을 하고 나는 우연히 만난 심형진 선배와 술을 마셨다. 잠시 후 최광석을 비롯한 후배들이 합석을 했고, 술자리가 끝났을 때 나는 거금 6만 원어치의 술값을 계산했다. 선후배들이 선(先)결제 해놓은 술값이 아직 갈매기에 남아 있었던 까닭이다. 그들의 돈으로 생색을 낸 셈이다. 연락을 해왔던 선배와는 정작 대화를 나누지 못했고 우연히 만난 객들과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면서 ‘이건 뭐지’ 하는, 약간은 황당하고 약간은 억울한 생각이 들었지만 우연히 만난 일행들 역시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라서 그냥 심정적으로 퉁치기로 했다. 세상 일이 어디 계획된 대로만 흘러가던가. 참새방앗간에 뭇 참새들이 날아와 앉는 거야 인지상정, 아니 조(鳥)지상정이겠고. 내일은 죽었다 깨나도 집안에 틀어박혀 인천일보 원고를 완성하리라. 상식이 있는 인간이면 중요한 숙제를 앞에 놓고 의미 없는 외출을 할 리야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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