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다시 아버지의 묘역 위로 8월의 바람은 불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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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아버지 기일과 입추(8월 8일)가 한날이다. 아버지는 평생 가족들에게 (특히 엄마에게) 땀나는 일만 만들고 사셨는데, 하늘나라 가시는 당일까지도 가족들에게 땀을 비 오듯 흘리게 하시다니, 참으로 일관성 있는 분이 아닐 수 없다. 한량으로 사시다가 50대에 우연히 (아니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만나 술과 담배를 끊고 독실한 크리스천이 되셨다. 은퇴 장로로 지내시던 말년의 아버지는 오로지 성경공부에만 집중하셨는데, 그분이 남긴 성경 주석과 필사 노트만 해도 대학노트로 수십 권이 넘었으니 그 도저한 집중과 인내는 가히 신의 자녀라 할만 했다. 그래서였을까 크게 고생하지 않으시고 집에서 가족들이 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으니 그것은 분명 당신의 믿음에 대한 신의 보답이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올해도 역시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일관성’을 생각하며 ‘일관성 있게’ 땀을 뻘뻘 흘리며 꽃을 사들고 아버지 묘역을 찾아, 비석의 새똥도 닦아 내고, 화병의 조화도 새것으로 갈 것이다. 그 당연한 수고로움을 핑계로 로또 복권 번호나 알려달라고 해볼까. 고지식한 아버지는 여전히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이기도 하고, 정도도 아니다.”라고 대답하실 게 분명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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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無常)
막 꽃이 피기 시작한 어느 봄날 아버지는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말없이 두 평 남짓 화단만 바라보고 있었지요 안방에 펼쳐진 성경책 위에는 흠집 난 돋보기가 다리를 교차한 채 가부좌를 틀었고 아버지의 성긴 머리칼들이 봄바람에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지요 고치 속 웅크린 애벌레 같은 아버지의 등 뒤로 야속한 시간들이 웅덩이를 이룰 때 아버지 생애 같은 옹색한 봄 햇살 한줌 당신의 마른 몸을 수의처럼 감쌌지요
그날 저녁 아버지는 양치를 하다 삭은 치아 두 개를 잃었습니다ㅣ문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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