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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창 넓은 카페 같은 사무실에서 (4-14-월, 종일 비) 본문

일상

창 넓은 카페 같은 사무실에서 (4-14-월, 종일 비)

달빛사랑 2025. 4. 14. 23:14

 

오늘은 홀로 사무실을 지켰다. 두 명의 선배는 모두 출장 중. 비는 종일 내리고, 흐르는 물 위를 바람에 떨어진 꽃들은 둥둥 떠다니고, 청사 복도에는 젖은 우산들이 버섯처럼 피어 있었다. 비서실에 들러 카누 커피를 얻었다. 은영 주무관이 환하게 웃으며 "또 필요한 거 없어요?" 하고 물었다. 그 물음에 담긴 호의가 고마웠다. 휴가에서 돌아온 모 주무관도 "4.16 추모제 원고 잘 받았어요" 하며 일어나서 꾸벅 인사했다. 비서실장은 파티션 아래로 고개를 숙인 채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지난주 교육감의 콜럼비아 출장을 수행하고 돌아온 박 비서도 역시 통화 중이었다. 모두가 빗물처럼 부산했다.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혼자 먹었다. 현미밥에 돼지고기 짜장볶음, 샐러드, 백김치, 총각김치, 달걀 게살국, 거봉 다섯 알, 군만두 3개를 먹었다. 식사 중에 앞자리 장학사 중 한 명이 지난밤 시청한 드라마 이야기를 했다. 아는 배우들의 이름이 나왔을 때 슬쩍 그녀 쪽을 쳐다보다가 다른 장학사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고개를 까닥하며 인사했다. 나도 밥을 씹으며 그녀와 똑같이 '까딱' 했다. 식당을 나와 계단을 오를 때, 정현기 장학사가 다가와 "형님, 왜 혼자 식사하셨어요?" 하고 물었다. "모두 출장!" 하고 짧게 대답했더니, 그는 "아!"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날씨가 이상하지요? 난방기 켜놓고 일하세요. 감기 걸리기 딱 좋은 날씨 같아요" 하며 일행들에게 돌아갔다. 참 착한 사람이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사람. 

 

오후에 몇몇 후배에게 전화를 받았으나, 대체로 의미 없는 수다이거나 지난 주말 겪은 일의 후일담이었다. 소중한 나의 오후를 빼앗기고 싶지 않아 일부러 바쁜 척하며 전화를 끊곤 했다. 오후 내내 텅 빈 사무실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분위기 좋은 카페의 주인이거나 빗물이 흐르는 창가의 손님처럼 지냈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다 퇴근 무렵에야 비로소 잦아들었다. 서운했다. 거리에서 만난 바람은 찼다. 마치 꽃샘추위가 다시 찾아온 것 같았다. 서울에는 눈이 제법 쌓이기도 했다는데...... 이렇게 저렇게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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