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4월의 눈가는 늘 젖어 있어 (4-13-일, 비+진눈깨비) 본문
4월에는 하늘에 들지 못하고 떠도는 중음신들이 많아서 그런 걸까? 4월의 눈가는 늘 젖어 있다. 어제 세월호 추모문화제가 있던 날, 점심 나절부터 내린 비는 오늘 새벽까지 이어졌다. 우세가 제법 거세기도 했고, 한밤중에는 비가 얼어 진눈깨비로 내렸다. 4월에 만나는 진눈깨비라니, 이것만 봐도 예사롭지 않다. 비는 잠깐 그쳤다가 종일 오다 말다 했다.
아침에 일어나 속이 쓰려서 라면과 순두부를 넣고 끓여 먹었다. 운동하고 청소한 후, 인터넷 쇼핑으로 포기김치와 갓김치를 주문했다. 오후에는 누나가 탈모 예방에 좋다는 건강보조제와 상추, 깻잎, 풋고추, 방울토마토 등을 사다 주었다.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김치는 너무 쉬어서 돼지고기를 사다 넣고 김치찌개를 끓였다. 슈퍼에 들렀을 때, 아이스크림과 우유도 함께 샀다.
제주 4.3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야 하는, 잔인한 계절 4월을 지나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4월만 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사람의 소리로 울고 다니는 새들과 그리운 이의 얼굴이 되어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봄날의 꽃들을 온전히 마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올 4월은 한동안 빼앗겼던 민주주의와 양심을 되찾을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나의 겨울과 나의 숙면, 나의 작고 소중한 행복을 빼앗아 갔던 파렴치한 인간을 정죄의 현장으로 끌고 나올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이건 결코 작은 행복이 아니다. 절박하고 힘겨웠으므로 너무 크고 벅찬 행복이다.
우연히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다시 보게 되었다. 구독하고 있는 쿠팡플레이에서 최근 서비스를 시작한 모양인데, SNL(서예지 편)을 시청하기 위해 들어갔다가 이 드라마의 팝업을 본 것이다. 이 드라마는 총 8 시즌, 73부작으로 무척 방대한 드라마다. 시즌 1부터 6까지가 각 10부작이고, 시즌 7~8이 각각 7부작과 6부작이다. 드라마 1회 분량이 대략 1시간 전후니, 이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감상하려면 약 73시간이 소요되는 셈이다. 다만 쿠팡플레이에서는 재생속도를 2배까지 빠르게 설정할 수 있어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건너뛰면서 보면 시간을 단축할 수는 있다.
본래 드라마는 (특히 이 작품처럼 판타지 장르는) 재생 버튼을 누르는 순간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그만큼 중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부터 시청하기 시작하면 분명 내일 새벽까지 잠을 못 자게 될 게 뻔하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관련 정보와 지식, 이를테면 칠(7)왕국의 전사(前史)와 배경, 지역적 특성과 가문의 문화를 필기까지 하면서 감상했더니 이미 본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재미있었다. 덕분에 앞서 감상할 때 놓쳤던 의미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물론 이번에도 시즌 8까지 하루 이틀 사이에 모두 감상하게 될지,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감상하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몇 날 며칠이 되든, 분명 시즌 사이를 오가며 이 작품 전체를 꼼꼼히 다시 감상하게 되리라는 건 확실하다.
다만, 시즌 8은 독자와 관객의 기대에 못 미친, 그야말로 폭망 수준이었다. 내용의 일관성을 상실한 것은 물론이고, 앞선 시즌에서 던져 놓은 떡밥도 전혀 회수되지 않은 채 서둘러 끝내버린, 한마디로 용두사미였던 결말 부분에 실망했던 당시의 악몽이 스멀스멀 되살아난다. 제작비(돈)를 중시하는 제작자의 입장과 적은 제작비를 감안하고 스토리를 만들어야 했던 작가, 그리고 너무 긴 시간 동안 이 작품에 박제되었던 배우들의 피로감이 엄청난 명작을 망작으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책의 경우도 마찬가지, 은행나무 출판사의 초기 판본의 번역 수준은 그야말로 오역의 파노라마였다. 나중에 독자들의 항의가 하도 빗발치니 번역자를 교체해 2016년쯤에 새로운 판본이 나오긴 했지만, 아무튼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처럼 완성된 텍스트가 있었던 게 아니라 시즌 후반부는 새롭게 소설을 창작하면서 드라마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작가의 스트레스도 만만하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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