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잔인한 봄날의 일기③ (3-29-토, 잠깐 진눈깨비) 본문
오전에 마트에 들러 순대와 달걀, 곰탕 팩과 콩나물, 숙주와 순두부, 두부와 칼국수면, 아이스크림과 시금치 등을 샀다. 오이와 풋고추, 깻잎은 너무 비싸 단골 채소가게에서 사기로 하고 그냥 왔다. 좀 덜 싱싱해도 반값에 살 수 있어 채소는 단골 채소가게를 주로 이용한다. 오래 보관하지 않고 빨리 먹으면 일반 마트의 채소와 다를 게 없다. 다만 원산지를 표시하지 않고, 현금으로만 계산해야 하는 건 개선해야 할 점이다. 그런 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가격이 싸긴 하지만.
점심에는 장 봐온 면으로 칼국수를 끓였다. 생면이라서 끓는 육수에 칼국수 면을 직접 넣어 끓였는데, 물 조절을 못한 건지 죽이 되었다. 분명 계량컵으로 정확하게 넣었는데 왜 그렇게 된 건지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름 면 요리(냉면, 국수)에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낭패를 봤다. 다음에는 번거로워도 육수와 면을 따로 끓여야겠다. 유튜브를 너무 믿지 말고 오히려 나의 경험과 감각을 믿어볼 생각이다.
화초들이 앞다투어 새순을 내밀고 있다. 마치 새순 나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정작 오늘 바깥 날씨는 무척 안 좋았다. 눈발도 간간이 날린 데다가 (어제도 추웠는데) 어제보다 기온이 더 떨어져서 오늘 최저 기온은 1도였다. 가벼운 패딩을 입고 집을 나섰다가 추워서 혼났다. 마트가 가까워 그냥 다녀오긴 했지만, 찬바람이 옷 속까지 파고들었다. 꽃샘추위가 다시 온 듯했다. 거리에서 탄핵 촉구 집회하는 동료들이 추워진 날씨 탓에 고생할까 저어 되었다.
부친상(父親喪)을 당한 친구 장이 마음을 보태줘서 고맙다는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내용을 보니 단체 문자로 발송한 문자가 아닌 듯했다. 상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직접 고맙다는 문자를 보낸 마음이 미뻤다. 나도 다시 장문의 문자를 보내 그를 위로했다.
제고 산우회 친구들은 홍천으로 1박 2일 봄나들이 떠났다. 나 보고도 가자고 여러 차례 종용했으나 대체로 이런 종류의 나들이는 부부 동반이었으므로 가지 않았다. 핑계 댈 게 없어서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하느라 못 간다고 했다.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 하지만 요즘 불면에 시달리면서 컨디션이 난조를 보여 가까운 공원에도 못 가고 집에서 자전거만 탔다. 미세먼지 없는 날에는 반드시 공원에 들러 산책하겠노라고 다짐했는데, 막상 미세먼지 없는 날이 되자 컨디션을 핑계로 집에서 잠만 잤다. 술을 마시지 않아 금단현상이 나타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이건 알코올 기운이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겪는 필연적인 불면과 컨디션 난조일 거라고 스스로 위안하기로 했다.
모든 게 내 맘대로 풀리지 않아도 봄날의 시간은 어김없이 제 갈 길을 오롯하게 갈 것이고 만화(萬花)는 또 흐드러지게 피어 내가 가는 곳곳에서 바람이 불 때마다 비처럼 흩날릴 것이다. 나는 그 꽃비를 맞으며 잔인한 시간을 견뎌온 자신을 토닥이며 길 떠나온 것, 어긋난 것들이 온전히 제 자리를 찾아가는 대견한 모습을 기쁜 마음으로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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