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저무는 하루의 뒤안길에서 (1-13-월, 흐림) 본문
대체로 유튜브를 보거나 영화를 보며 하루를 보냈다. 오후에 침대에 누웠을 때 문득 박노해의 시 ‘노동의 새벽’이 생각났다. 내 삶과 노동의 관계를 생각했던 건 아니다. 그저 ‘이러다가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가 끝내 못 가지’란 구절이 떠올랐을 뿐이다. 무엇보다 ‘이러다가’라는 시구가 아프게 다가왔다. 그 시구가 나에게는 ‘이렇게 살다가는’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어떤 일에 몰두하면 주변의 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나의 성향상 그 ‘어떤 일’이 부정적인 일일 때 나는 매우 위험하다. 부정적인 일일수록 더욱 매혹적인 법이다. 우리 몸을 조금씩 망가뜨리는 당분은 얼마나 달콤한가?
나는 유혹에 약하다. 신선놀음에 도낏자루가 썩는다는 말이 있다. 재미있는 일이나 놀이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릴 때 사용하는 말이다. 나무꾼의 고달픈 일상에 비해 선경(仙境)에 살며 낚시나 하고 바둑이나 두는 신선들의 삶의 모습은 얼마나 달콤했을 것인가? 삶의 도구인 도끼가 썩는 줄도 모르고 달콤한 놀음에 취한 나무꾼의 모습이 현재의 내 모습이다. 나는 너무 재미있고 쉽고 편하고 자극적인 것들에 젖어 있다. 이 문제 많은 사회의 지식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을 망각하고, 다독, 다서(多書), 다상량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문학인으로서의 본문도 잊은 채 자극적인 영상과 1차원적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영상에 경도되어 있는 것이다.
핑계 댈 말이 없진 않다. ‘등이 휠 듯한 삶의 무게’ 때문이기도 하고, 다양한 층위의 반동적 경향을 견딜 수가 없어서 골치 아픈 뉴스를 멀리하는 것일 테니, ‘살기 위해 그런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람은 죽을 때까지 학생이기에 공부하지 않는 일, 시인으로서 읽지 않고 쓰지 않고 고민하지 않는 일, 종교인으로서 반기독교적인 인사들의 준동을 용인하는 일, 이웃의 고통을 나 몰라라 하는 일, 시민으로서 내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일은 그 어떤 말로도 합리화할 수 없다. 그러한 삶은 사색하고 고민하고 반성할 줄 아는 인간의 삶이 아니다. 껍데기만 사람일 뿐 생각은 없고 본능에 충실한 짐승과 다를 게 없다. 지금 내가 그런 상태다. 반성을 하지만 반성조차 관성화되어 있는, 아주 질긴 무기력의 질곡에 빠져 있다.
저무는 하루의 뒤안길에서 문득 그간의 내 일상을 돌아보노라니 눈물 난다. 시간을 너무 허투루 썼다. 미처 내 나이만큼의 시간을 쓰지 못한 채 슬어져간 생명들을 돌아보게 하는 밤이다. 지금도 병상에서 투병하는 이들에겐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아까울 것인가? 그러니 대단한 뭔가를 이루지는 못해도 하루를 무의미하게 살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새해가 오고 달력이 바뀌었는데도 좀처럼 구태의연한 내 삶을 바꿔내지 못한다면 그건 시간과 내 자존심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습관은 더욱 진작하고 나쁜 습관은 서둘러 발본하는 1월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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