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강철 무지개 (12-21-목, 맑음) 본문
최저기온 영하 13.9도, 체감온도 영하 20도, 마치 ‘겨울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하는 본새로 연일 맹추위가 몰려오고 있다. 그래서 추위를 별로 타지 않던 나였지만, 올겨울에는 외출할 때 자주 내복을 껴입는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웬만큼 추워서는 내복을 입지 않았다. 내복을 입는다는 건 늙었다는 증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영양가 없는 자존심보다 효율과 건강을 챙기기로 했다. 내복을 입지 않고 겨울을 난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괜히 오기를 부렸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나만 손해 아닌가. 요즘 내복은 디자인도 예쁘고 몸에 착 달라붙어 착용감도 좋다. 안에 입었는지 내가 먼저 말하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은 알 수도 없다. 도둑놈들이 호가호위하는 이 얼빠진 남한 사회에서 그렇지 않아도 정신없어 죽겠는데, 남의 내복 착용 유무에 신경 쓸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올겨울이 시작되며 두 벌의 내복을 구매했다.
그러는 한편 자연스럽게 늙는다는 것에 관하여 자주 생각해 본다. 한겨울에 내복을 입느냐 안 입느냐로 젊고 늙음을 가늠하는 것의 부질없음에 관해서도 생각한다. 한 발 재게 디딜 곳조차 없는 극한 상황과 가공할 혹한 속에서도 (미래의 희망인) 강철 무지개를 보았던 시인 이육사의 기개만큼은 아니더라도 흔한 겨울 추위에 쉽사리 굴복하는 약한 모습만은 보이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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