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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애인들아, 사랑의 주인공은 너희가 아니다 (9-15-금, 비) 본문

일상

애인들아, 사랑의 주인공은 너희가 아니다 (9-15-금, 비)

달빛사랑 2023. 9. 15. 20:31

 

다시 또 비 왔다. 날은 아침저녁으로 산뜻해졌다. 돌아다니고 움직여도 땀이 나지 않는 날씨, 그런 날씨가 나는 좋다. 지금이 그렇다. 애인들아, 서두르지 않아도 때가 되면, 닿게 될 건 닿게 되고 이루어질 건 이루어지는 법이라고 믿고 싶겠지만, 자신의 바람(願)이 성취될 걸 필연으로 알고 진득하게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이 모두에게 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여러 번 좌절을 맛본 사람일수록 더욱 조바심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신에게 드리는 기도조차 그렇다. 신은 주사위 장난을 하지 않겠지만, '신의 뜻'이라고는 결코 믿을 수 없는 비극과 참사를 만났을 때, 우리는 '도대체 신의 뜻이란 얼마나 복잡하고 미묘한 것이기에 이토록 불가능한 수준의 인내심을 요구하는가' 하며 신의 뜻에 의문을 품기도 한다. 미치지 않고서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갖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랑도 그렇다. 절실함만으로 성취할 수 없는 게 사랑이다. 어떤 사랑은 평생에 걸친 기다림을 전제한다. 또 어떤 사랑은 하면 할수록 자신의 가슴에 상처만 깊어진다. 애인들은 종종 자신들이 사랑(하는 행위)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랑의 주인은 사랑 자신일 뿐이다. 애인들의 마음과는 무관하게 사랑의 성취, 사랑의 상처, 사랑의 기쁨, 사랑의 조바심 모두를 지배하는 건 사랑이다. 사랑이 성취되었을 때 애인들은 신열에 들떠서 마치 자신들의 절실함과 진정성이 사랑을 완성한 것이라고 착각한다. 사랑이 장난꾸러기라는 걸 모르기에 하는 착각이다. 애인들의 사랑이 이루어졌다면, 장난꾸러기 사랑이 '그렇게 하는 게 재미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니 사랑(행위)에는 필연이란 없다. 사랑(마음)을 관리하는 사랑의 기분에 따라 그때그때 성취와 좌절의 롤러코스트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 애인들아 모든 사랑, 이를테면 사랑의 행위도 사랑하는 마음도 그것의 주인인 변덕쟁이 사랑도 절대 믿지 마라. 사랑은 그저 변덕쟁이 사랑의 짓궂은 장난일 뿐이다. 하지만 사랑의 이 가벼움과 우연성, 가끔 얻게 되는 희열에 관해 의심하지 않고 믿고 싶다면, 그건 너희의 자유다. 그 자유가 너희를 괴로운 행복감, 행복한 조바심에 빠지게 하리. 아무것도 모르는 주변의 지인들은 행복하거나 괴로운 너희의 얼굴을 보며 "사랑에 빠졌군요. 아름답기도 해라"라며 한마디씩 하겠지. 사랑이 짓궂은 건 항상 괴로움과 행복감을 동시에 준다는 거지. 그러니 애인들아, 이제부터는 사랑을 믿지 마라. 기다리는 일에도 의미 부여하지 마라. 사랑은 그저 우연일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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