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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추운 날 좋은 선배들과 (12-14-수, 맑았다 흐림) 본문

일상

추운 날 좋은 선배들과 (12-14-수, 맑았다 흐림)

달빛사랑 2022. 12. 14. 22:09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인 듯싶다. 괜스레 일찍 깨어 아침부터 부산했다. 머리는 감지 않았다. 모자를 쓰고 출근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다른 날보다 일찍 나와서 그런지 전철 안도 무척이나 한산했다. 출근하자마자 사무실 곳곳에 뜨거운 물을 뿌려놨다. 가습기가 없어서 이렇듯 원시적인 방법으로 건조함을 버티고 있다. 오늘 점심에는 밖에 나간 김에 홈플러스에 들러 가습기 하나 구매할 생각이다. ‘구매 계획’을 메모해야 하나. 요즘은 계획했던 일들을 쉽게 잊곤 한다. 메모했다는 사실을 또 메모해야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날이 추워 그런지 옥상에 올라오는 사람이 현저하게 줄었다. 더위와 추위가 호젓함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 게 재미있다. 오늘처럼 추운 날은 구내식당에서 식사하고 싶은데 수요일이라서 어쩔 수 없이 밖에 나가 식사해야 한다. 지역 상인들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 매주 수요일은 구내식당을 운영하지 않는다. 귀찮긴 해도 민관의 상생을 위해서는 잘한 일이다. 잘한 일이다.

휴대전화 통화 내역을 정리하다가 자동으로 저장된 통화 녹음 목록을 발견했다. H와 나눈 통화는 물론 가족, 친구, 지인들과 나눈 통화가, 가깝게는 며칠 전에서부터 멀게는 6개월 전까지 시간별로 저장되어 있었다. 수십 개의 녹음 목록 중 서너 개를 재생해 보니 어쩜! 늦은 밤에 나눈 대부분의 통화에서 나는 술기운이 진하게 배인 목소리로 말을 하고 있었다. 저녁에는 대개 술집에 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7월에 나눈 H와의 통화를 재생해 보니, 내 이야기를 들으며 깔깔 웃는 H의 맑은 웃음소리가 기분 좋게 흘러나왔다. 그때는 몰랐는데, 다시 들어보니 취중에 전한 나의 말들은 대부분 (에둘러 표현하긴 했지만 명민한 사람이라면 이내 눈치챌 게 분명한) 고백에 가까웠다.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듣는 자신의 목소리가 이다지도 낯설다니, 재밌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연민하게 되는 상황은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어제 비서실 회식의 후유증으로 직원들은 오전 내내 힘들어했다. 나는 비번이어서 회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저마다 풀어놓은 지난밤의 무용담은 제법 요란했다. 자정 무렵까지 이어졌던 술자리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늦지 않고 출근한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페셔널한 직업의식이라기보다는 루틴의 무의식적인 작동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점심에는 콩나물 해장국을 먹었다. 속이 덜 풀렸기 때문일까, 몇몇은 국물만 떠먹고 건더기는 모두 남겼다. 회식에 참석하지 않았는데도 마치 내가 해장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콩나물해장국 한 그릇을 싹 비우고 나니 마음마저 개운해졌다.

그나저나 어젯밤 상훈이는 "내일 형진 형을 만나기로 했는데, 시간 되면 같이 만나요." 하고 연락해 왔다. ‘이 추운 날씨에 술은 무슨……’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형진 형이 보고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시립합창단 공연을 함께 관람하자는 상훈이의 제안을 거절한 바 있어서 거절하기 부담스럽다. 오늘 약속마저 거절하면 그야말로 ‘연사(連死, 고스톱 용어)’인 셈인데,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 어제 전화했을 때도 많이 취한 목소리였는데, 오늘도 술을 마신다고? 정말 연일 달리는구나. 대단한 체력의 상훈. 아무튼 퇴근 시간까지 몸과 마음의 상태를 살펴보고 판단해야겠다. 지금 시각 13시 40분.

정확하게 6시, 인천집에 도착했다. 상훈이 먼저 와서 주인과 안주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늘 조개다. 섭과 웅피 조개, 상훈이가 좋아하는 안주다. 가격도 비싸고 (나에게는) 맛도 다른 조개에 비해 월등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는데, 상훈이는 왜 그렇게 조개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15분쯤 지나서 용호 형이, 5분 정도 더 지나 형진 형이 각각 도착했다. 두 분 모두 고등학교 선배라서 우연찮게도 오늘은 제고 동문 모임이 되었다. 두 분 모두 진지한 형들이라서 대화도 진지했다. 담배 피우러 나와 갈매기 쪽을 살짝 보았더니 생각보다 손님이 많았다. 특히 늘 내가 앉던 자리에는 젊은 여성들 서너 명이 자리 잡고 있었다. 미안함이 덜했다. 늘 인천집에 오면 갈매기의 눈치를 보게 된다. 단골의 마음은 그런 것인 모양이다. 소주 6병을 마시고, 역시 상훈이가 자주 가는 이자카야 '류'에 들러 정종을 마셨다. '철없는' 상훈이가 형들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비싼 술을 시켜 당혹스러웠다. 형들이야 "괜찮아, 편하게 먹어"라고 말했지만, 나도 선배로서 자주 후배들의 술값을 내주는 처지에서 마음이 좀 불편했다. 1차는 형진 형이 생일이라며 술값을 냈고, 2차는 용호 형이 내겠다고 했지만, 나는 부담스러웠다. 정종 두어 잔을 마시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귀가했다. 술집을 나가자마자 택시가 와서 오래 떨지 않고 이내 집에 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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