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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겨울 본색 (12-16-금, 맑음) 본문

일상

겨울 본색 (12-16-금, 맑음)

달빛사랑 2022. 12. 16. 23:10

 

잡티를 모두 눈과 함께 쏟아내서 그런 걸까, 청사 옥상에서 바라본 하늘은 가을처럼 맑고 햇살은 눈 시렸다. 옥상에는 군데군데 녹지 않은 눈더미가 쌓여 있었고 밀대가 지나간 자리만 눈이 녹아 일정한 간격으로 길이 나 있었다. 기상청에 의하면 오늘은 올들어 가장 추운 영하 11도(체감온도 –18도), 연일 ‘가장 추운 날씨’가 갱신되는 중이다. 하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그런지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담배를 사러 들어간 편의점에서 주인에게 “방송에서 하도 겁을 줘서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춥진 않은 것 같은데요. 바람이 불지 않아서 그런가?”라고 말했더니, 주인은 “아니에요. 손님이 든든하게 입으셔서 그렇지, 오늘 만만하지 않게 추운 날씨예요.”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잠깐 머쓱해졌다.

전철 타러 가면서 내 판단이 경솔했다는 걸 이내 알게 되었다. 따뜻한 집에서 오리털 파카를 챙겨 입고 막 나왔을 때는 몰랐는데, 길을 가다 보니 뺨이 따가울 정도로 추위가 느껴졌다. 내복을 입고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므로 바람만 없다면 오늘 같은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게 겨울의 본색(本色)이다.

■■

청사에서 조금 일찍 나와 병원에 들렀다. 혈압과 고지혈 약을 처방받고 나오는데, 원장인 선배는 "동절기 백신 맞았어요?" 하고 물었다. "아니요. 맞아야 되나요? 전차 접종 이후 4개월이 지나지 않은 거 같은데요." 했더니, 원장은 간호사에게 확인을 부탁했고, 확인 결과 4차 백신 접종 후 오늘로 4개월이 지났다고 했다. 결국 계획에 없던 5차 접종을 했다. 핑곗김에 운동도 안 가고 집에서 푹 쉬었다. 백신에 대한 불신이 여전히 많지만 나는 지금껏 국가에서 접종을 종용할 때마다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백신을 맞아왔다. 특별한 부작용은 없었다. 주사 맞은 자리의 통증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주말에는 뒹굴뒹굴하면서 방콕해야 할 것 같다. 계획에는 없었지만, 일단 맞아놓고 보니 뭔가 겨울이 오기 전 김장한 느낌이랄까, 심리적으로 든든했다. 

■■■

오늘밤도 밤바람이 매섭다. 한파가 제법 길다. 모든 게 꽝꽝 얼어붙은 혹한의 밤, 누군가는 추위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를 이 겨울밤에 나는 엉덩이가 뜨거울 정도로 따뜻한 방 안에서 영화를 보고 있다. 이 얼마나 미안하고 고마운 축복인가. 작은 것에 고마워하는 마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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