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나의 사랑은 굳센 교목(喬木)의 우듬지 (11-18-금, 맑음) 본문
어제는 퇴근길에 갈매기에 들렀다가 막걸리 두 병을 마시고 일어서려고 할 때쯤 우연히 상훈이와 연락이 닿아 인천집에서 상훈이를 만났다. 사실 갈매기에 들르자마자 종우 형은 혁재에게 전화해 나의 갈매기 도착 소식을 알렸는데, 그때 혁재는 동화마을에서 피아노 연습 중이라고 했다. 12월 공연을 앞두고 맹연습 중인 모양이었다. 종우 형은 조구 형에게도 연락해서 시간 되면 잠깐 나와 ‘문 시인’과 한잔하라고 전화한 것 같았는데, 종우 형의 마음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종류의 오지랖이 달갑지 않다. 물론 그들을 보면 기분이 좋겠지만, 형이나 혁재나 다 나름의 일정이 있을 것이고, (나와의 인간관계를 생각할 때) 전화까지 받았는데 나오지 못하는 마음들은 얼마나 부담스럽고 불편했을 것인가. 물론 어제처럼 손님이 별로 없을 때는 매상도 매상이겠지만, 빈자리를 채워주는 누군가가 절실했을 것이고, 그래서 막걸리 두 병을 마시면 늘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의 루틴을 알고 있기에 서둘러 ‘술 동무’를 불러주어 (나를) 좀 더 술자리에 있다 가게 하려고 그랬을 것이라 짐작은 한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정서적 월권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스럽지 않은 모든 행위는 언제나 나를 불편하게 한다.
인천집에서 상훈, 하동과 만나 술 마시고 있을 때, 결국! 뒤늦게 갈매기에 들렀다가 내가 인천집으로 상훈이를 만나러 갔다는 말을 들은 혁재가 우리 자리에 나타났다. 말은 “이곳에 형들 있을 거란 말을 듣고 인사만 드리러 왔어요.” 했지만, 혁재는 내내 우리와 함께 술을 마셨고, 인천집을 나올 때쯤 비로소 다시 갈매기로 돌아갔다. 상훈이는 “형, 혁재까지 빼돌렸다고 종우 형이 투덜대지 않았을까요?” 하고 웃으며 물었다. “아니야. 내가 근처에 있다는 걸 혁재가 알게 된 이상, 혁재는 일단 나를 찾아갈 거라는 걸 형도 분명히 알았을 거야. 게다가 너까지 있다는 말을 들었을 거 아냐? 신경 쓰지 마.” 내가 대답했다. 하동이가 계산하겠다는 걸 제지하고 술값을 계산했다. 7만 8천 원, 확실히 술값은 갈매기보다 인천집이 비싸다. 내가 술값을 계산해 준 게 고마웠던지 후배들은 “2차는 우리가 살게요. ‘비틀스’에 가서 음악이나 듣다 갈래요?” 하고 제안했다. 속이 거북했지만, 그냥 헤어지기에는 시간도 이르고 아쉽기도 해 비틀스로 자리를 옮겼다. 비틀스에는 여자 손님 한 명뿐이었다. 내가 들어가자 사장인 유철 형은 따로 신청하지 않았는데도 내가 비틀스에 갈 때마다 청해 듣던 임지훈의 ‘꿈이어도 사랑할래요’를 무려 세 번이나 반복해서 틀어주었다. 그 맛에 단골집을 가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비틀스에 있다는 연락을 받고 곧바로 혁재도 합류했다.
갈매기에서 막걸리 두 병, 인천집에서 소주 2병, 비틀스에서 맥주 두어 병을 마셨더니 시간이 갈수록 속이 좋지 않았다. 결국 후배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그곳을 나왔다. 거리는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나도 카카오택시를 부르려고 앱을 켰는데, 마침 빈 택시 한 대가 수협사거리 쪽에서 오는 것이 보였다. 누군가 콜을 신청한 택시려니 하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아무도 잡지 않았다. 아마도 사람들이 호출한 콜택시가 아닌, 일반 빈 택시 한 대가 우연히 그곳을 (먼저) 지나고 있었던 것. 이게 웬 떡이지 하고 손을 들었더니 바로 옆의 여자 손님을 지나쳐 내 앞에 정차했다. 오호, 술집에서 나와 바로 택시를 잡는 건 무척 드문 일인데, 그 드문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이다.
집에 도착해 현관에 들어서자 자동으로 설정해놓은 보일러가 막 가동되었는지 거실 바닥이 따뜻했고 실내가 훈훈했다. 몸이 일시에 흐물흐물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세수하고 이를 닦다가 결국 구토했다. 토할 때마다 위산 냄새가입 안에 가득했다. 익숙한 냄새. 일부러 손가락을 입에 넣고 두어 번 구토를 하고 나니 속은 개운해졌다. 꿀물을 타서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며칠 전, 음주를 삼가겠다고 다짐했는데, 토할 정도로 마시다니, 작심삼일도 유분수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그러다 술이 완전히 깨면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할 공산이 컸다. 고육지책으로 넷플릭스 시리즈물을 켜놓고 보면서 잤다.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도 영상은 그때까지 재생되고 있었다. 1회에서 시작한 영상은 7회를 막 지나고 있었다. 넷플릭스 시리즈물은 자동 재생 기능이 있어서 끄지 않는 이상 해당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재생된다. 6시간 정도 잠을 잤다.
저녁에는 간단하게 장을 봤다.
오랜만에 삼계탕을 먹었고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H의 문자를 받았다. 근무하고 있는 재단의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몇 가지 형식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H가 고민하는 바로 그 문제에 관한 한 전적으로 H와 생각이 같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날처럼 포근했던 일요일 (11-20-일, 맑음) (0) | 2022.11.20 |
---|---|
아동학대 예방의 날ㅣ갈매기 개업 15주년 (11-19-토, 맑음) (2) | 2022.11.19 |
2023년 대입 수능 시험ㅣ아버지 생각 (11-17-木, 맑음) (0) | 2022.11.17 |
숙취와의 전쟁ㅣ만년필 성애자인가 (11-16-水, 흐림) (0) | 2022.11.16 |
브라보 마이 라이프! (11-15-火, 흐리고 잠깐 비) (0) | 2022.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