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나는 이 의도적인 도피의 위험성을 안다 본문

일상

나는 이 의도적인 도피의 위험성을 안다

달빛사랑 2022. 5. 7. 09:38

 

 

거실 텔레비전을 내 방으로 들여놨다. 위험한 일이다. 이전에도 몇 차례 있었던, 책보다는 영화에 빠져 지내게 될 거라는 일종의 조짐이다. 윤 씨가 당선된 이후 뉴스 따위를 보지 않다 보니 굵직굵직한 소식조차 SNS를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 나의 건강하지 못한 방식의 분노는 침대 위에서 혼자 이불 차는 것이거나 스스로 못 견뎌 하는 울림 없는 감정의 소모일 뿐이겠지. 모르는 거 아니다. 울림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윤의 얼굴을, 그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는 여우 같은 인사들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나 없어도 잘만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서운한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맘에 들지 않는 세상과의 거리를 더욱 멀게 하려고 영화를 본다. 환상 속으로 숨고 허구 속에서 유영한다. 물론 나는 이 의도적인 도피의 위험성을 안다. 오래 품어서는 안 될 생각이다. 그것들이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싹을 틔우기 전에 나는 환상과 허구의 세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아직은 윤과 새로운 권력을 수긍하기에 마음의 상처가 너무도 깊다. 상황을 객관화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의도적으로라도 나를 저 무의미한 일과의 단순성 안에 던져넣거나 왜곡된 현실을 잊게 하는 환상의 세계로 던져넣지 않으면 오히려 내 마음에 병이 들 것 같다. 여름이 끝나갈 때쯤이라야 아마도 이 상처는 조금씩 치유되기 시작할 거다.

선거를 앞두고 다시 공허한 말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그들의 공약대로라면 우리가 사는 이곳은 벌써 지상낙원이 되었어야 옳다. 피곤하다. 후보와 정치 진영이 쏟아내는 빈말이 결국은 방정맞은 그들의 입들을 압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판타지일는지는 모르겠지만……. 포근하고 의뭉스러운 주말이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