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5월의 지구는 한층 더 헐거워지겠군 본문
한국 현대 시사에 선명한 발자취를 남긴 시인 김지하가 81세의 나이로 하늘에 들었다. 서슬 퍼런 독재정권 하에서 그가 남긴 시편들은 암울한 시대의 등불이었고 움츠린 양심들의 지표였다. 전두환 정권하에서 대학 생활을 보낸 나 역시 그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들을 듣고 부르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곤 했다. 그는 혁명적 시인이자 탁월한 서정시인이었다. 숱한 민중 시인들의 시가 주제와 이념은 선명하나 문학성은 다소 아쉽다는 평가를 받을 때도 그의 시만큼은 예외였었다. 그는 단순히 시인이라고 하기에는 이념의 스펙트럼이 한없이 넓었다. 그는 혁명가였고, 새로운 사상을 정초한 사상가였으며, 우주와 생명, 세상의 기운과 환경을 탐구한 생태적 인문학자였다. 그래서 그의 삶을 온전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치밀한 고찰과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물론 그 역시 시대의 격랑과 빠르게 변화하던 세상의 흐름에서 비롯된 현기증 때문에 잠시 민중 민주 진영과 엇나가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과연 당시 우리의 주장에는 오류가 없었는지, 그의 주장은 과연 민주주의 운동에 찬물을 끼얹고 진보의 흐름을 퇴행시킨 것이 맞는지 판단하기가 무척 어렵다. 분명한 건, 적어도 당시 이루어진 운동 진영에 대한 그의 비판은 단순한 공명심이나 노탐에서 비롯된 건 아니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긴박한 정세를 핑계로 민중민주 진영에서도 세련된 전술을 구사하지 못한 게 역사적으로도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역사가들의 심층적인 고찰이 필요한 대목이라 하겠다. 시 쓰는 후배로서, 그리고 젊은 시절의 한때를 활동가로 살았던 운동의 후배로서 그의 영전에 나의 존경과 고마움을 담은 인사를 올린다. 잘 가시라. 이제 고통도 슬픔도 없는 하늘에서 편히 쉬시라.
시인 김지하도 가고, 영화배우 강수연도 가고.... 세상은 또 그만큼 헐거워졌을 거다. 마음이 꿀꿀하여 혁재와 둘이서 예술회관 소나무 아래에 돗자리를 깔고 시인과 배우를 생각하며 막걸리를 마셨다. 초여름의 햇볕이 소나무 사이로 드문드문 내렸다. 내일부터 열릴 윤 아무개의 세상을 어찌 견뎌야 할까. 그야말로 술 권하는 사회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한 긴장감, 숙제를 끝내고 (0) | 2022.05.11 |
---|---|
1986년 5.10 교육민주화선언 (2022-05-10, 맑음) (0) | 2022.05.10 |
5월 8일(일), 어버이날ㅣ부처님 오신 날 (0) | 2022.05.08 |
나는 이 의도적인 도피의 위험성을 안다 (0) | 2022.05.07 |
예술회관 야외무대에서 달을 보며 술 마시다 (0) | 2022.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