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4월 8일 금요일, 맑음 본문
오늘은 날이 어찌나 좋은지 맘까지 설렜다. 그래서 출근길에 복권 두 장을 샀다. 몇 가지 일을 처리하고 어제 코로나에 확진된 혁재와 그의 어머님의 안부가 걱정돼 전화를 했더니 다행히 혁재는 낫는 중이라고 했고 어머니는 새벽에 무척 심하게 앓으셨지만 다행히 날이 밝으면서 차도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사실 늘 집에만 있는 어머님들이 밖에서 옮아왔을 리는 없고, 이건 순전히 혁재가 감염돼 어머님께 전염시켰을 거라고 생각한다. 9시가 조금 넘었을 때는 진안에 있는 희순이의 전화를 받았다. 미경이에게 조의금을 전달하고 싶은데 올라올 수는 없고 대신 내줄 사람이 없냐고 물었다. 내 편에 부탁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점심 시간이 지나고 몇 가지 일을 처리한 후 일찍 귀가했다. 날이 이렇듯 좋으면 다양한 유혹이 올 만도 한데, 오로지 귀가에 대한 욕망만 크니 희한한 일이다. 물론 지하철 정거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잠깐 누군가에게 연락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가긴 했다. 하지만 이전 같았으면 득달같이 연락했을 텐데 요즘은 그저 마음만 그렇다. 집에 들어와 옷을 갈아 입고 내 방의 컴퓨터를 켜면 얼마나 마음이 편안해지는지, 나만의 공간에서 내 방식대로 시간을 조직할 수 있다는 뿌듯함은 그 어떤 달콤한 만남과 술자리보다 매력적이다. 그렇다고 사실 혼자 있을 때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생각과는 달리 아주, 지극히 소모적인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잦다. 자거나 먹거나 (무언가를) 보거나 멍하니 있거나 청소를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빈 집 안을 이리저리 걸어다닌다거나 화초에 물을 주거나..... 그게 다인 날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술을 마시거나 사람들을 만나 수다를 떠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일이 기다리고 있어서 귀가를 서두른 건 아니라는 말이다.
굳이 이유를 말하자만 편안함이다. 누군가를 욕하거나 과도하게 칭찬하거나 둘 중의 하나가 대부분인 술자리에서는 감정소모가 너무 크다. 그 자리에서는 잠시 통쾌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돌아오면 공허해진다. 그 느낌은 술이 깨고 나서도 한동안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고 보면 집이 재미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사람들과의 다양한 관계가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감정의 소모가 싫어서 홀로 있고 싶어지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고 내가 사람 자체를 꺼리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우리집 근처로 오거나 퇴근 전에 연락을 해오면 반가운 마음으로 만나긴 한다. 다만 내 쪽에서 먼저 연락하지 않을 뿐이다. 편한 사람과의 조촐한 만남은 언제든지 환영이다. 아무튼 토요일과 일요일을 어떻게 지낼 것인가를 생각하며 기대에 젖는 금요일 오후는 늘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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