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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4월 6일 수요일, 흐렸다가 갬 본문

일상

4월 6일 수요일, 흐렸다가 갬

달빛사랑 2022. 4. 6. 00:03

 

7시 30분 출근, 청사는 고요하다. 날은 잔뜩 흐렸다. 예보에 의하면 낮부터 날은 전형적인 봄날씨를 보일 것이다. 예보는 어디까지나 예보, 비와 관련한 예보는 늘 빗나가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다음주 수요일 저녁 시청 앞 광장에서는 세월호 추모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하여 다음주 수요일만큼은 날이 쾌청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빗속에서 행사를 치르는 일 만큼 쓸쓸한 일은 없다. 울고 싶을 때 빗물을 핑계로 맘껏 울 수는 있겠지만, 죽은 이들의 바람은 산 자들의 눈물이 아니라 자신들이 죽은 이유를 명확하게 밝혀 억울함을 풀어줄 올곧은 용기와 의지일 것이다. 이 한 많은 나라에서는 산 자들의 책임이 늘 무거울 수밖에 없다. 

 

청명에도 나는 결국 부모님의 묘역에 들르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 장을 보고, 청소하고, 영화를 시청했으며 낮잠까지 잤으나 나의 안부를 전하고 부모님의 안부를 묻기 위한 발걸음을 떼지 않은 것이다. 국내 공포 영화 '곡성'에서 주인공의 어린 딸이 내뱉은 대사, "도대체 무엇이 중한디(중요한데)?"가 귓가에 쟁쟁쟁 울리는 것 같다. 그러게, '도대체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 물론 많은 시간과 공력을 투여한다고 해서 그 일이 사람들에게 항상, 객관적으로 중요성을 인정받는 건 아니다. 하지만 뭔가에 절박한 사람에게 사실은 그 '객관적'이란 말은 얼마나 공허한 말인가. 내 진심과 공력을 투자하는 일의 중요성을 왜 타인의 시각에서 타산해야 한단 말인가. 나에게는 지금 하고 있는 일, 내 자신의 중요한 일부를 투여하고 있는 바로 그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런 의미에서도 정말 객관적으로 잘못했다. 내 스스로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하느라 정작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한 것이다.


오전부터 일이 많았다. 4.16 세월호 참사 8주기 관련 추모사를 작성했고, 어제 돌아가신, 전 민예총 지회장과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역임했던 고 강광 교수의 추모시도 의뢰받았다. 하지만 강 교수님과는 이렇다할 인연이 없어서 정중히 고사했다. 물론 강 교수님에 관해서는 잘 알고는 있었지만, 그 분이 민예총에 계실 때 나는 인천 문화현장에 없었다. 따라서 단지 지역의 명망가 중 한 분을 새카만 후배가 이름으로만 알고 있었을 뿐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는데 그분의 조시를 쓴다는 건 시를 거짓말로 '만들라'는 말 아닌가. 그야말로 행사를 위한 시를 쓰라고 요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건 고인에 대한 예의도 아닐 뿐더러 시인의 자존심으로도 허락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강 교수님에 대한 애도의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다. 지역 어른으로서 그분이 민중예술계에 보여준 선구적인 실천은 후배들에게 훌륭한 귀감이 되어 왔다. 지역에서 문화운동을 하고 있는 내가 어찌 대선배의 죽음에 애도의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시 쓰기만 아니라면 몸을 움직여 할 수 있는 그 어떤 일도 나는 할 용의가 있다. 그건 당연한 후배의 도리일 테니까 말이다. 추모 행사에 고명처럼 자꾸 시낭송을 넣는 것도 일종의 매너리즘이다. 그분과의 추억이 돈독한 이들이 돌아가면서 추모사를 하면 족하다. 굳이 시 낭송 순서를 넣고자 한다면, 그분과 친했던 시인에게 의뢰하면 될 일이고. 추모제를 준비하는 동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내 선택이 올바른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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