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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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미안하게도 평온한 날

달빛사랑 2022. 1. 20. 00:32

 

 

오전에는 장을 봤다. 장이라고 해봐야 국거리와 채소 몇 종류, 그리고 달걀을 사오는 게 전부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장을 봐야 식사 때마다 1식 1찬을 하지 않게 된다. 엄마 돌아가시고 얼마간은 궁상맞게 보이지 않으려고 반찬 서너 가지를 놓고 제법 집밥답게 먹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반찬 수가 줄어들고 라면이나 찌개 하나 놓고 밥을 먹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술을 자주 마시다보니 음주한 다음날에는 해장을 한다는 미명하에 라면을 자주 끓여먹는다. 담당 의사도 짜게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하긴 엄마가 계실 때도 라면이나 냉면을 자주 먹었다. 울 엄마 지론은 음식이 당기는 것도 젊었을 때 가능한 일이라며 먹고 싶은 게 있을 때 먹자 주의였다. 그래서 딱히 내 식성에 관해서는 별 말씀이 없으셨다. 편식을 하던 아들이 최근 친구들과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바꾸고 체질 개선을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신기할 따름이다. 의지의 문제가 아닌가 싶기는 한데, 그렇다면 아들이 나보다 훨씬 의지가 강한 거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부모의 마음이 그렇겠지만, 나보다 아들의 건강이 더 신경 쓰였던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나 역시 건강에 신경 써야 할 나이지만, 내가 식단을 관리하는 이유는 건강도 건강이려니와 초라한 홀아비처럼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혼자 먹는 밥상에 반찬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다면 얼마나 서글퍼 보이겠는가. 마지막 자존심과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는 순간 삶은 비루해진다. 화려하진 않더라도 최소한의 우아함은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귀찮고 힘들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장을 봐서 냉장고를 채워놓는 것이다. 달걀과 김치만 냉장고에 가득해도 괜스레 마음이 넉넉해진다. 끼니를 대충 때우지 않는 일과 정리정돈을 깔끔하게 하는 것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엄마는 내가 걱정이 되어 자주 내가 사는 곳에 들러볼 게 분명한데, 내가 정리되지 않은 지저분한 집에서 식사도 대충하며 지내는 걸 보면 얼마나 속상하시겠는가. 다행히 나는 엄마의 부지런함과 깔끔함의 유전자를 생래적으로 타고났기 때문에 입성도 그렇고 집안 살림도 그렇고 대체로 깔끔한 편이다. 재료만 있으면 음식 만들어 먹는 것을 귀찮아하지 않는다. 혼자 밥을 먹어도 외롭지 않고 오히려 편하다. 나만의 식사 속도를 유지하며 느긋하게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음악을 듣거나 동영상을 시청하며 밥을 먹을 수도 있다. 주변을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얼마나 편한가. 물론 여러 사람이 함께 식사하는 자리는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겠지만, ‘그 나름의 즐거움’이 혼밥하는 사람들에게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명색이 대한(大寒)이라고 오늘은 날씨가 무척 차가웠다. 토요일이나 되어야 날이 풀린다고 한다. 추우면 가난한 사람들은 서러운 법이다. 겨울이 그들에게 더는 모질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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