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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그의 삶을 추체험하는 시간 본문

일상

그의 삶을 추체험하는 시간

달빛사랑 2021. 6. 24. 00:33

 

 

사실 나는 그를 잘 모른다. 아니 그렇게 말하면 안 될 거 같다. 모르다니, 그럴 리가. 알았던 그와 새롭게 알게 된 그가 크게 다르지는 않았으나,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이 너무 많아 '잘 모른다'고 했던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제대로, 온전하게, 총체적으로 알지 못했다'라고 했어야 옳다. 그렇다. 나는 그를 안다. 심지어 친한 선후배라고 그와의 관계를 다른 사람에게 말하곤 했다. 실제로 우리가 친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인천에서 오래 같이 활동하기도 했고, 자주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적은 것도 아닌 술자리를 가졌으며 재단의 사업 심사 때는 함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갈매기에서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든 생각은 그가 매우 약해 보였고, 진중하고 깊다는 것이었다. 음악과 문화예술에 대한 지식도 해박했다. 대화 속에서 그 역시 노동자 민중운동의 하나로 문화예술 운동을 시작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가 알고 있는 사람과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무척 많이 겹치기도 했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간 후에는 우리가 어디선가 만났던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만남이 서너 차례 이어졌을 때, 그는 생각보다 다변이어서 놀랐다. 특히 기존 운동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그는 무척 냉소적으로 변하곤 했다. 그러다 그가 경기문화재단으로 활동 단위를 옮기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만남이 소원해졌다. 가끔 심사 자리에서 만나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는 더욱 병약한 몰골로 나타나곤 했다. 지인들에 의하면 간이 안 좋아 자주 병원을 들락거리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그를 본 지 꼭 2년 만에 나는 그의 부고를 받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가 생전에 쓴 글이라며 그의 아내가 다인아트에 가져온 두툼한 원고 뭉치를 살펴보고 있다. 종일 그의 삶을 추체험하며 그와 함께 울고 웃었다. 생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모니터를 보다가 잠시 쉴 때면 그와 술 마시던 시절이 자꾸만 떠올랐다. 영별이 그리 낯선 일이 아닌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조금 쓸쓸해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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