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두 편의 영화를 보다 본문
일본 영화 <메종 드 히미코>와 대만 영화 <자객 섭은낭>을 보았다. 두 영화의 결은 다소 달랐지만 모두 시간이 아깝지 않은 영화였다. <메종 드 히미코>는 게이를 소재로 한 영화였는데 사회 통념상 쉽지 않은 소재를 다루면서도 그토록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는 일본의 문화 풍토가 부러웠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감정이 도를 넘은 우리 풍토에서는 제작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다소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내용은 다소 신파적이었고 게이인 아버지와 어린 시절 버림받은 딸과의 갈등이 결국에는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해소된다는 전개 또한 기시감이 있는 영화였지만 이런 영화를 만들 생각을 한 감독이나 감독의 의도를 십분 이해하고 그 작품에 공감해준 관객이나 부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스펙터클한 대작은 드물지만 소소한 이야기를 실감나게 그려내는 데는 일본 영화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다. ‘뭐 저런 시시한 내용이 다 있어?’ 하며 의구심을 가지고 영화를 보지만 결국 해당 영화를 관객의 자신의 영화로 만들어 공감의 폭을 극대화하는 능력은 일본영화가 단연 압권이다. 소수자를 바라보는 정직하면서도 따스한 시선에 감동을 받은 영화였다.
<자객 섭은낭>은 무협영화의 외피를 띠고 있지만 사실 이 영화는 정통 무협영화와는 결이 다르다. 당연히 통쾌한 액션이나 핏물이 낭자한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대사도 많지 않다. 그래서 친절한 영화라고는 할 수 없다. 이 영화는 인물들이 주인공이 아니라 말없는 자연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들이 시종일관 스크린을 채운다. 인물 사이의 대화의 여백을 온통 사물과 풍광으로 채우다 보니 영화를 보는 내내 다양한 풍경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주인공 섭은낭 역시 여느 무협 영화의 주인공과는 많이 다르다. 그녀는 엄청난 무공을 지닌 살수(자객)이지만 여타 무협 영화의 자객들처럼 목적한 바를 비정하게 완수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자객답지 않게 고민하는 인물이다. 제거 대상의 처지와 상황에 따라 살생을 망설이거나 유예한다. 자기에게 명령을 내린 스승(이면서 동시에 오더의 주체)의 품에서 벗어나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 스승은 말한다. “자객의 도의는 범부의 그것과는 다르다. 너의 무예는 완벽하지만 인간적 정리를 끊어내지는 못하는구나.”라고. 그런 제자를 시험하기 위해(아니 붙잡아 두기 위해) 떠나는 섭은낭을 공격하지만 두어 합 만에 스승의 옷자락에 칼자국만 남긴 후, 그녀는 스승에게 등을 보이며 유유히 멀어져간다. 이미 무예로는 스승을 넘어선 것이다. 섭은낭의 의지가 결연하다는 걸 확인한 스승은 그녀의 뒷모습만 한참을 바라본다. 결국 그녀는 누군가의 의뢰나 명령에 의해 살아가는 수동적인 자객의 삶을 거부하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형식의 무협 영화를 만들어 낸 감독의 감각에 박수를 보내게 되는 대목이다, 주인공 섭은낭 역의 서기는 비정한 살수로서의 삶과 상대의 처지를 연민하는 인간 은낭 사이의 내적 갈등을 표정만으로 완벽하게 연기했다. 시간 날 때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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