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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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아무도 없는 곳'을 보다(비 내리다 갬)

달빛사랑 2022. 6. 6. 00:22

 

 

 

인물들이 하나의 호흡을 형성하는 각각의 에피소드를 연결한 영화.

미영 : 첫 번째 에피소드. 치매에 걸린 엄마와 소설가인 주인공이 다방에서 대화하는 내용. 카메라는 엄마 미영의 젊었을 때 모습을 보여주다가 미영이 자신의 아들 창석을 알아보는 순간, 나이 든 현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창석의 아버지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엄마 미영은 창석에게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났다는 말을 한다. 창석은 자리를 바꿔 엄마 옆에 앉고 엄마 미영은 창석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유진 : 두 번째 에피소드. 소설 계약 건으로 출판사 여직원 유진을 만난 창석은 그녀와 함께 산책하며 대화를 나눈다. 그녀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놓는다. 소설에 관한 이야기, 인도네시아 애인에 관한 이야기, 임신했다가 아이를 지운 이야기, 아이의 이름을 린틱(나뭇잎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으로 지은 이야기 등등. 창석은 묵묵히 들어주며 간간이 끼어들 뿐이다.

성하 : 세 번째 에피소드. 창석은 카페에서 혼자 책을 읽다가 우연히 사진작가 성하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 계절은 늦겨울 혹은 이른 봄. 성하는 대화 중에 품속에서 청산가리를 꺼내 창석에게 보여준다. 그가 청산가리를 지니고 다니는 이유는, 유방암을 앓다가 이제는 희망마저 잃은 아내가 죽을 때 따라 죽기 위한 것이었다. 성하는 웃으며 “멍청한 생각이지요?”라고 묻고, 창석은 “네, 그런 거 같네요.”라고 대답한다. 창석은 웃지 않는다. 점점 안 좋아지는 아내를 위해 성하는 모든 것을 다해보지만, 아내는 깊은 잠에 빠져있다고 했다. 중을 만난 이야기, 그에게 맞고는 약수를 얻은 이야기, 그 약수를 아내의 상처 부위에 발랐더니 의식이 돌아왔다는 이야기, 아내가 작은 새 한 마리가 자신의 품속으로 날아들었다는 이야기 등등. 그리고 그 스님이 북쪽으로 가보라고 해서 나왔다가 창석을 만났다고 말한다. 창석도 웃고 성하도 웃고……. 그러다 성하가 전화를 받으러 잠깐 밖으로 나갔을 때 상위에 놓인 청산가리를 슬며시 주머니에 집어넣는 창석. 성하는 돌아와 방금 아내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병원으로 향한다.

주은 : 네 번째 에피소드. 음악이 나오는 칵테일 바에서 혼자 하이볼을 마시며 책을 보던 창석에게 여직원 주은이 말을 걸어온다. 그녀는 창석에게 서비스라며 하이볼 한 잔을 준다. 의아해하는 창석에게 “제가 오늘 마지막 근무거든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러면서 창석이 무언가를 노트에 쓰는 것에 관심을 보인다. 요즘 공책에 뭔가를 쓰는 사람을 보는 일이 드물다며, 자신도 쓰는 것을 좋아하며, 특히 시를 쓴다고 말한다. “시를 쓴다고 다 시인은 아니겠지만, 마음에 담긴 건 풀어내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말하는 주은, 그리고 “멋지시네요”라고 대답하는 창석. 그녀는 손님을 소재로 시를 쓴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교통사고에 관한 이야기를 해준다. 그 사고로 그녀는 왼쪽 눈을 잃었고 목에서 늑골까지 길게 난 상처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자신은 손님들에게 재미있는 기억을 사들인다고 말을 하며 창석에게도 팔 만한 기억이 없느냐고 묻는다. 창석은 대학시절 이문동 대학가에서 겪은 기억(골목길에서 토끼를 본 일)을 말해준다. 서너 잔의 술을 마시고 담배를 함께 피우다 주은은 휴대폰을 꺼내 자신의 시를 읊조린다. 서로를 바라보면 웃는 두 사람.

창석 본인 이야기 : 마지막 에피소드. 창석 자신의 이야기. 한밤중 자다가 깬 창석은 책상 위에 놓인 성하로부터 가져온 청산가리를 바라보다 밖으로 나온다. 길고 긴 골목길을 홀로 걸어가는 창석. 이윽고 도착한 공중전화 부스 앞. 부수 안으로 들어간 창석은 물끄러미 전화기를 바라보다 수화기를 든다. 그리고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긴 발신음 끝에 헤어진 아내 혜경이 전화를 받는다.

“잘 지냈어?”

“그냥”

“여긴 봄이 늦게 오네.”

“그래?”

“응”

“글은 잘 마무리했어?”

“응”

“궁금하네”

“곧 나올 거야. 읽을 거야?”

“아니. 자신 없어. 시간 지나서 읽어 볼 거야”

“그래”

(서로의 한숨. 그러다가 창석이 먼저)

“나 이제 괜찮아. 아직 괜찮다고…… 더할 수 있다고. 너만 괜찮으면 다시 해볼 수 있을 거 같아”

(혜경의 한숨)

“우린 노력 많이 한 거 같아”

“그렇게 생각했는데……. 다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잠시 침묵) 여긴 아직 추워”

“여기도 그래요.”

(한숨, 사이)

“내가 다시 가면 안 될까? (한숨) 안 될까? 다시 해 봐도, 되지 않을까, 우리?”

(한동안 침묵, 그러다가)

“그래, 와요. 보고 싶어”

“어…… 당장 표 알아볼게. 가장 빠른 걸로”

“응. (사이) 빨리 와요. 보고 싶어”

“……나도, 나도 보고 싶어.”

“응. 수연이도 아빠가 보고 싶다고 자꾸 보채.”

(눈물 흘리는 창석)
“수연이 죽었잖아.” 흐느끼는 창석.

“무슨 소리야. 내 옆에서 얼마나 이쁘게 자고 있는데.” 창석 흐느낀다. 무거운 음악 흐른다.

잠시 후, 잠에서 깬 창석. 꿈을 꾼 듯 의아해하는 모습. 그러다 또 흐느낀다.

 

새벽에 깨어 벽에 등을 기댄 채 멍하니 앉아 있는 창석. 탁자에는 청산가리가 희석된 물컵이 놓여 있다. 장면이 바뀌고 골목을 걸어가는 창석. 걸어가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아내를 부축하며 걸어가는 노부부의 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골목을 걸어간다. 뒤이어 유진과 만나 공원을 산책할 때 만난 실성한 여인이 자신의 아이로 보이는 소년의 손을 잡고 창석이 걸어간 골목 끝으로 사라진다. “희망이 오잖아”를 외치면서…….

 

장면이 바뀌고 노트북 앞에서 자신의 소설을 마무리하는 창석의 내레이션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그렇게 엄마는 한 소년의 손을 잡고 골목 끝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꿈을 꾸었다.”


결국 이 영화는 죽음과 삶, 상실과 희망에 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영화 속 모든 인물은 자신과 삶의 일부분을 공유하던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했거나 소중한 뭔가를 잃어버린 존재들이다. 에피소드별로 살펴보면, 엄마 미영은 남편을 잃었고, 출판사 직원 유진은 낙태(세상에 나와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은 생명)를 했으며, 공원에서 만난 실성한 여인도 아이를 잃은 것으로 추정되고, 사진작가 성하는 아내를 잃었다. 또한 카페에서 만난 주은은 눈을 잃었고, 주인공 창석 부부는 딸 수연이를 잃었다. 소중한 걸 잃은 인물들은 슬픔을 감추며 간신히 현실을 견디거나 저마다의 방법으로 슬픔을 은폐한 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그 모든 슬픔 뒤에서 옹색하게 도사리고 있는 희망을 말하고 있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한 장면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발언이나 주인공 창석의 내레이션을 통해 그러한 감독의 의도는 쉽게 읽힌다. 하나의 주제를 구현해 내기 위해 작위적이라는 비판에도 개의치 않고, 거침없이 개연성 없는 상황을 창조하거나 현실과 꿈(환상)을 넘나들며 관객의 판단을 모호하게 하는 영화 문법은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전매 특허다. 아이유가 나왔다기에 보게 된 영화인데,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망작은 아니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영화 또한 아니다. 그래도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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