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두 권의 시집을 받았습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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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의 시집을 받았습니다. 시대와 현실을 대하는 내면의 결기가 예사롭지 않음에 불구하고 평소에는 늘 사람 좋은 남도 사람 특유의 푸근하고 소박한 미소가 아름다운, 목포 박관서 시인의 『광주의 푸가』(삶창시선 67, 2022)와 늘 바라볼 때마다 안쓰럽게 흔들리는 수선화처럼 자주 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곤 하는 이설야 시인의 『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창비, 2022)가 바로 그 시집들입니다.
박 시인의 시들은 ‘광주의 푸가’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의 빛이자 여전히 빚(채무)이기도 한 광주에 헌정하는 시편입니다. 이 시들을 통해 시인은 결코 박제될 수 없는 역사 속 광주를 자신의 개인적인 삶(자신의 주변과 허다한 인간관계를 포함한) 속으로 끌어와 자신만의 방식으로 내면화하여 광주의 의미를 재생산해 냅니다. 이러저러한 정치 지형 속에서 자꾸만 무기력해지는 요즘, 살아있는 양심의 올바른 실존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에 대답을 찾고자 한다면 박관서 시인의 ‘푸가’들을 함께 읽어나갈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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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야 시인의 이번 시집 『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에서도 나는 혹시 시인의 시에서 항용 만나곤 하는 슬픔, 처연함에 가슴이 먹먹해질까 봐 내심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시를 차근차근 읽어갈수록 이번에 만난 시들은 그 이전의 ‘낯익은 것들’과는 뭔가 확연히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그러한 변화의 정체는 바로 시인 자신이 절망과 슬픔의 현실 위에 의식적으로 파종하고 있는 희망의 씨앗들 때문일 거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그것은 그녀 특유의 비유와 상징, 상상력의 외피에 가려져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요.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일부러 극한의 상황, 극강의 슬픔, 그 밑바닥을 보여준 후, ‘자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요?’라고 질문을 던지는, 천연덕스러운 포즈를 취하기도 합니다. 확실히 그녀는 달라졌습니다. 무엇이 그녀에게 이러한 적극적인 희망과 연대의 동력을 제공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녀 특유의 치열하고 진지한 모색의 결과일 것이다) 나는 이설야 시인의 시 세계는 이 시집을 변곡점으로 해서 더욱 커다란 변화와 확장을 모색해 가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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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훌륭한 시집을 보내주신 두 분의 시인께 감사드립니다. 마음 팍팍한 요즘, 두 분의 시들은 내게 큰 힘이 돼주었습니다. 가까이 두고 자주 꺼내서 읽어보겠습니다. 두 분 시인의 건강, 건필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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