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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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비.. 모래내시장에서 후배들을 만나다

달빛사랑 2019. 9. 6. 23:00

저녁나절 갈매기에 들렀다. 순전히 비 때문이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조유리 시인에게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명수와 병걸이를 보기로 했는데 나도 같이 봤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모래내 시장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내심 귀찮았지만 모래내 시장이면 집 근처였고 명수도 보고 싶어서 약속 장소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차가 막혀서인지 병걸이는 도착 전이었고 유리와 명수, 둘만 앉아 있었다. 회집은 무척 붐볐다. 동갑내기 두 시인은 안주를 시켜놓고도 젓가락을 대지 않아 6마리의 구운 전어가 접시 위에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다섯 마리의 전어를 발라먹고 있을 때쯤 병걸이는 도착했다.

 

시각장애인인 병걸이는 볼 수 없으면서도 비를 좋아했다. 담배를 피우러 나가서도 가게 차양 밖으로 자꾸 손을 내밀어 내리는 빗물을 확인하곤 했다. 이렇게 비를 좋아하는 친구가 빈집에서 내리는 빗소리를 홀로 들을 때 과연 어떤 심정일까 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먹먹해져 왔다. 검은 안경 너머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으로 그는 거리의 풍경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담배를 피우는 3분 남짓한 시간 동안 그의 마음의 눈은 어디쯤에서 하염없었을까.

 

명수는 애완견을 키우면서 생활 패턴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일단 한 생명을 키우는 것에 대한 책임감 때문인지 주중에 술도 덜 마시고 일찍 귀가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리고 해피’(애완견 이름)와의 이동을 수월하게 하려고 중고차까지 구입했다. 바람직한 변화다. 명수의 건강과 명증한 의식을 위해서 해피가 무척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명수의 시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나까지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장애인이나 노인에 대한 관심이 많은 유리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척 힘들면서도 재미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듣지 않아도 어떤 것이 힘들고 어떤 것이 재미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얼마 전부터 요양센터 소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힘든 만큼 보람도 큰 모양이다.

 

세 사람 모두 무척 열심히들 살고 있다. 병걸이는 일주일에 두어 번씩 농성집회에 합류해서 노래를 불러주고 노동자 기타모임인 반격에도 열심히 나가고 있다. 그리고 간간히 시를 발표하고 사람들 만나 술도 마시고……. 명수는 명수대로 유리는 유리대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고 있다. 명수 역시 장애인이지만 그런 치열함과 삶에 대한 긍정 때문인지 늘 표정이 밝고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 준다. 유리는 여전히 세상과 남자에 대한 방어본능이 있었지만 그래도 많이 표정이 밝아진 것 같았다. 비는 내리고 술은 취하지 않고, 하지만 시간은 가고……. 다행히 유리가 피곤하다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술자리는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나와 유리는 각각 집으로 가고 명수와 병걸이는 맥주 한 잔 더 하겠다며 우리와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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