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태풍은 우리집 감나무를 부러뜨리고.... 본문
태풍 ‘링링’이 몰고 온 큰 바람에 마당에 있던 감나무가 부러졌다. 오래 전 아파트에 살 당시, 태풍 ‘곤파스’가 인천을 관통할 때 아파트단지 내 소나무 두어 그루가 나무젓가락처럼 처참하게 부러지는 것을 직접 목격한 바 있다. 두려웠다. 누군가 일부러 손으로 흔들어대듯 맹렬하게 요동치던 베란다 창문과 종잇장처럼 거리 위로 굴러다니던 떨어진 간판을 보면서 나는 자연의 위압적인 모습에 처음으로 놀라움을 넘어 두려움을 느꼈다. 태풍이 도시의 곳곳을 유린하며 지나가던 15분 남짓 되던 시간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인천에 살면서 나는 두려움을 느낄 정도의 자연재해를 만난 적이 별로 없다. 집중호우나 태풍은 대개 인천을 우회해서 지나가거나 설혹 관통한다고 해도 내가 살던 곳에서는 한 번도 두려움을 느낄 만큼 위협적인 모습을 만나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고지대에 살아서 물난리를 겪어본 적도 없고, 아파트에 살아서 유리창이 깨질까 걱정은 했지만 지붕이 날아가거나 붕괴될 것이라는 걱정은 전혀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마당의 감나무가 맥없이 쓰러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재해는 시점의 문제일뿐 그 누구도 예외를 두는 것이 아니라는 걸 새삼 느꼈다. 더불어 직접 겪어 봐야 늘 재해의 위협에 자주 노출될 수밖에 없는 삶의 조건인 사람들을 비로소 헤아릴 수 있게 된다.
일단 아래층 부부와 함께 감은 따로 따서 모아놓고, 굵은 가지들과 부러진 중동은 톱으로 잘라서 문 밖에 내놨는데, 가슴이 무척 쓰렸다. 비록 내가 직접 심은 나무도 아니고 어차피 계약 기간이 끝나면 떠나야 할 집이었지만 나는 마당의 감나무를 무척 사랑했다. 그리고 올해 유난히 많은 감을 달고 있어 볼 때마다 뿌듯했다. 하지만 너무 무거웠던 걸까? 가공할 자연의 위력 앞에서 서운함과 경외감이 교차했다. 다행히 뿌리는 남아 있고 밑동 주변에서 새롭게 가지가 뻗어 나와 커가고 있는데, 그것이 부지런히 자라 다시 또 무성한 감꽃들을 마당에 떨구고 탐스러운 감들을 주렁주렁 달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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