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종무식 본문
거창한 종무식은 아니지만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후배들과 점심을 먹으며 간략하게나마 한 해의 사업을 정리했다. 삼계탕 한 그릇씩 나눠 먹고, 그 동안 수고했다는 의례적인 덕담을 나눈 자리였지만 그래도 한 해를 정리하는 자리라는 의미를 부여해서였을까 일 년간 마주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누군가 “작년 이맘때도 이 자리에서 삼계탕을 먹으며 종무식을 한 거 같은데 벌써 일 년이네요.”라고 말했을 때 우리 앞을 스쳐지나간 시간의 속도감을 잠깐 의식했다.
오후에는 비교적 일찍 자리에서 사무실을 나왔다. 사무국장과 조촐한 술자리를 가지기 위해 갈매기에 들렀을 때 혁재가 혼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신기했다. 갈매기로 오면서 내내 혁재에게 연락을 할까 고민했기 때문이다. 혁재와 나와는 뭔가 통하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2017년 마지막 금요일, 나는 혁재를 만나고 싶었다. 그를 만나면 나는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올 한 해, 혁재로 인해 나는 덜 외로웠고 시를 사랑하게 되었으며 홀로 술잔을 기울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도 나도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다.
뜻밖에 혁재를 만났기 때문일까 술자리는 유쾌했고 나는 적당한 취기를 머금고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왔을 때 어머니는 주무시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날씨도 봄밤처럼 포근했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어머니와 함께 방송국의 연말 시상식을 시청했다. 어머니는 나와 함께 텔레비전을 시청하실 때면 더 크게 웃으시고 더 크게 말씀을 하신다. 그만큼 마음이 들뜨시는 모양이다. 존재만으로도 어머니의 마음을 둥둥 떠다니게 만들 수 있는데, 하물며 사랑 담은 덕담이나 대화를 하게 된다면 당신께서는 얼마나 좋아하시겠는가. 내년에는 좀 더 많은 시간 어머니와 대화하고 어머니와 함께 산책을 하며 어머니와 함께 한곳을 바라보며 어깨를 감싸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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