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내 의지가 몸의 신호를 접수하다... 본문
어제 박학(博學)의 아이콘 은준이로부터 러시아 시인 튜체프 시선집을 전해 받았다. 당연하게 술을 마셨고, 당연하게도 판이 커졌다. 판이 커졌다는 것은 술판의 멤버가 충원되었다는 것이고, 그것은 애초에 타산했던 주량의 범위를 넘어서게 되었다는 말이다. 사람은 사람을 부르고, 술이 술을 부르는 자리. 상훈이와 혁재, 화가 정균이가 합류해서 막걸리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 것 같은데, 마지막 순간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진부한 표현을 빌리자면, 그리고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주종을 섞어가며 마셔서 그런지 ‘필름이 끊긴 것’이다. 최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백팩의 존재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혹시 택시나 술집에 놓고 오지나 않았을까 하는 불안함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얼마 전 휴대폰을 택시에 놓고 내린 일도 있고, 귀가 과정의 기억이 종종 빠진 퍼즐 조각처럼 군데군데 유실되곤 하기 때문이다.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제 나의 몸이 알콜에 대해 지쳐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오늘도 편집회의 끝나고 술자리를 가졌다. 영욱이와 광일이형과 1차, 그리고 폭스로 자리를 옮겨 희순이, 무용하는 혜경이, 다인아트 미경이와 2차 술자리를 가졌다. 좋은 사람들과 공동의 화제를 안주삼아 대화를 나누다 보면, 기분은 좋은데, 과음하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오늘은 뒤늦게 영택이가 합류해서 한 잔 더하고 가라는 것을 ‘기특하게’ 거절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내 의지가 간만에 ‘힘겹게’ 접수한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닌데, 정말 아무 것도 아닌데,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텐데, 돌아오는 길 괜스레 마음이 뿌듯했다. 유혹과 시험을 이겨낸 고행자처럼...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앞으로도 내 의지가 술판의 마지막까지 명증하게 작동하길 바랄 뿐이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는 2월, 아쉽지 않다 (0) | 2012.02.29 |
---|---|
미안하고 고마워요. (0) | 2012.02.24 |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 대한 새삼스런 그리움 (0) | 2012.02.22 |
페시미즘에 대한 변명 (0) | 2012.02.21 |
2012년 제고산우회 시산제(무의도 국사봉) (0) | 2012.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