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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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빛바랜 사진 속의 내 친구들

달빛사랑 2009. 1. 24. 00:48

 

 

 

이 사진은 무주구천동, 백련사 올라가는 계곡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에도 나와있듯 80년 여름..

80년 5월, 아랫녘 '빛고을(광주)'에선 피바람이 몰아쳤다.

그러나, 아니 당연하게도(?)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들은

광주시민들의 피어린 항쟁에 대해서 의도적으로 침묵하거나 폭도들의 난동이라 악선동을 해댔다.    

나에게 수학과 영어를 가르치던 과외선생님은 서울대를 다니던 학생이었는데...

그(형)분은 80년이 시작되자, 자주 수업을 연기하거나 턱없이 늦곤 했다.

그리고 당시 전국적으로 진행되던 데모의 양상과 학생들이 관철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나에게 상세히 설명해 주곤 했던 기억이 난다. 나의 의식화 작업의 첫 단추는

본의아니게 아마도 그 형님이 꿰주셨던 것 같다.  

헝크러진 머리를 하고 방안에 들어서던 그의 옷에서 풍기던 매캐한 최루탄 냄새를 지금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그리고... 5월이 되자 광주에 관한 소식들이 비공식 채널을 통해

나와 대학생 형을 둔 내 친구들에게까지 은밀히 전해졌고,

봄이 끝날무렵 전국의 대학교에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어린 우리가 봐도 무언가 시국이 심상치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감지되었다.

그리고 서울대생이었던 과외선생과는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해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철없던 나와 친구들은 그 여름... 하수상한 시국과는 무관하게 전국일주 여행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서울역에서 밤기차를 타고 목포로 내려가서 5시간 동안 배를 타고 '홍도'엘 들어가고, 나올 때 흑산도를 경유,

목포로 다시 나와 무주 덕유산을 갔다가, 거기서 대구를 거쳐 청송의 주왕산으로 가고,  이어서 강원도로 향하고,

강원도에서 서울, 서울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자못 원대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결국 돈이 떨어져 강원도까지는 가지 못하고 주왕산에서 대구로 나와,

대구에서 밤기차인 비둘기호를 타고 8시간 걸려 서울에 도착하는 걸로 마감하긴 했지만....^^

여행 중에도 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공수부대원들이 2인 1조로 역구내를 경계하며 돌아다니는 걸

빈번히 목격할 수 있었다. 대학생차림의 젊은이들은 영낙없이 가방과 신분증을 내밀고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검문이 끝나길 기다리는 장면은 정말 흔한 풍경이었다.  

그처럼 혹독한 폭풍의 계절에, 철없는 우리들은 희희덕거리며 여행을 떠난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아직도 나는 광주 출신의 동료들이나 후배들에게 꼭 빚진 것 같은 기분을 가지고 있다.

철이 없다는 것은 무모하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일 수 있다는 걸 확인한 80년 여름, 여행이었다.

 

 

 

 

 

무주구천동 우체국 앞에서... 기타를 들고 있는 게 나다. 주왕산에서 우연하게 만난 안동여고 친구들하고

잠시 '대화의 시간(?)'을 갖게 되었을 때, 나의 기타가 빛을 발하긴 했지만, 그 나머지 시간에는

정말 가져간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하긴... 야전(이른바 포터블 전축)을 들고다니면서  춤을 추는 녀석들도 많았을 때긴 하지만....

  

 

 홍도에서... 트레이닝복 차림의 이 친구는 오석진...

이 친구의 아버님은 인천교대와 경북대 미대 교수셨던, 유명한 조각가 오종욱씨다.

술을 좋아하셨고, 어린 우리가 볼 때도 진정한 예술가셨던, 아버님께서는 아쉽게도 

뇌출혈로 일찍 작고하셨는데... 아버님의 예술가적 기질뿐만 아니라, 말술실력까지 물려받아

아직도 늘 젖어서 사는 친구다. 머리는 무척 좋은데... 틀박힌 생활에 대한 염증 때문에 고등학교 때

가출과 방황을 많이 한 친구다. 그래도 어울리지 않게(아니 어울리게도) 철학과를 나와 지금은 감정평가사로 일하고 있다.

 

 

 

역시 홍도에서.... 이 친구는 고세영... 공부를 잘 해서 늘 제물포고등학교 문과 1등을 도맡아했던 친구.

생긴 것과는 다르게 선생님이 되고 싶던 소박한 친구인데... 대한민국의 수재들이 간다는 대학의 법학과를 다닌 죄(?)로

처가집 식구들의 열렬한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결혼 후 뒤늦게 '원치않는' 고시공부를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았던 친구... 어찌되었건 지금은 인천에서 '원치않는' 변호사를 하고 있다.

최근 '원치않았던' 늦둥이가 생겨(3개월) 기쁨과 곤혹스럼의 중간쯤에서 어색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홍도... 가운데, 빅뱅의 대성이를 닮은 이 친구는 원영만... 감수성이 무척이나 예민한 친구...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까지 같이 다녀 비교적 나와 코드가 잘 맞는 친구다. 그렇지만

싸울 때는 정말 (정서적으로지만) 유혈이 낭자하게 한판붙는 친구.. 그러나 하루 지나면

언제 그랬냐싶게 룰루랄라 어울리는, 설명할 수 없는 끈적끈적함으로 결속된 친구다.

술과 무드를 좋아하고(자신은 풍류를 아는 것이라고 늘 우겨대지만)..현재 분당에 살고 있다.

 

 

홍도.... 세영이 사진에 뭐가 묻었네...에고.. 어쩌나.

 

 

 

 

 고등학교 3학년 때... 검은 교복이 갑자기 그리워지네...

 

 

고2 겨울방학 때라고 추정되는데... 친구네 지하 보일러실에서

음주파티가 벌어진 모양인데... 가난한 고등학생들의 안주란... 만만한 게 새우깡이네ㅋㅋㅋㅋ

 

 

 그렇게 저렇게 파란만장한 고등학교 시절을 정리하고 졸업하던 날...

불과 2년 후인데... 전국일주 여행을 떠났던 고1 때보다 많이들 삭았네.

나 - 고세영 - 오석진... 그래도 녀석들은 다 꽃들을 꽂거나 들고있는데... 나만 꽃이 없네^^

 

 

단골술집에서... 동동주 병과 나의 야전점퍼가 참 인상적이군...^^ 82년이라... 바로 윗 사진을 찍은 지 10개월 후인데....

제법 관록이 붙은 견적(?)으로 변해버렸네요..ㅋㅋㅋ

 

 

 

집 옥상에서...사진에 찍힌 날짜를 보니 83년 1월이네요. 그럼 술집 사진과 비슷한 시기인 것 같은데.....

그나저나.. 82년 12월의 사진을 눈앞에 놓고 보노라니... 세월 이 흐르는 물 같다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27년 전이면... 어언 30년에 가까운 세월인데... 그동안 난 잘 살아온건가 어쩐건가... 판단이 잘 안 서네요.

그래도 미친 바람이 불어대던 시절, 그 넌덜머리 나는 광풍을 피해 움츠리지 않고, 맞서 싸웠으며,

문학을 삶의 자양분으로 삼아 영혼의 고사와 훼절을 피할 수 있었고, 아직도 나를 아껴주는 많은 친구가 있는 걸 보면

뭐.. 그리 못 산 것도 아니라고 스스로 자위를 해 봅니다.

세월이 흘러 외모는 변하고, 주변의 사물들도 나와 더불어 나이를 먹어가겠지만, 젊은 시절의 순수했던 마음과 열정만은

이 세상 떠나는 그날까지 한결같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아.. 그리워라. 그때, 그 자리, 그 사람들.... 

 

첨부파일 Evergreen.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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