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짐승이 다스리는 시간, 초읽기 (3-26-수, 맑음) 본문

서너 달의 대립과 갈등, 욕설과 저주, 분노와 슬픔이 난무하는 현실이 나의 일상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내 심약한 영혼은 구겨진 휴지처럼 엉망진창이 되었다. 책을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사람을 만나도 반갑지가 않다. 한동안 물러갔던 불면이 다시 찾아왔다.
조지 오웰의 얼굴이 자주 떠올랐다. 소설 『동물농장』속의 돼지 나폴레옹이 현실의 '악마들'과 자꾸 겹쳐 보였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렸다. 그 ‘악마들’에 의해 시작된 짐승의 시간이 시나브로 우리 삶의 소중한 모든 걸 잠식하고 있을 때, 강산조차 울었다.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붕괴하고 공직자는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여념이 없는 현실 속에서 실화(失火)에 의한 산불은 우리 산천을 집어삼키고 있다. 마치 악마가 내뿜는 지옥불처럼 수십 명의 목숨이 불에 타 죽고, 수백 채의 가옥과 수만 그루의 나무들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고대국가 부여에서는 나라에 흉년이 들거나 변고가 생겨, 뭇 백성의 삶이 피폐해지면 왕을 죽여 그 책임을 물었다는데, 지금처럼 부여의 백성이 부러운 적이 없다. 너무 많은 이의 원성이 들리고, 너무 많은 곳이 아비규환이다.
이처럼 짐승들의 시간이 끝나지 않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방기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책무를 망각하고 오불관언(吾不關焉)하는 공직자와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정치인들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슬프다. 이 어둠의 시간은 언제라야 끝이 나는 걸까?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시편 44편 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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