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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겨울은 억울하다 (2-7-금, 눈 내리다 갬) 본문

일상

겨울은 억울하다 (2-7-금, 눈 내리다 갬)

달빛사랑 2025. 2. 7. 23:19

 

아침나절 눈 내렸다. 휴대전화 날씨 앱에선 대설(大雪)이 내릴 거라고 예보했지만, 사실 대설은 아니고 지면을 살짝 덮을 만큼 눈이 왔다. 다만 지난번 폭설 때는 날이 따듯해서 눈이 내리자마자 이내 녹았으나 오늘 내린 눈은 한파주의보와 함께 내린 눈이라서 빙판길을 만드는 위험한 눈이었다. 그래서 출근할 때는 눈에 덜 미끄러지는 운동화를 골라 신고 나왔다. 그래도 계단을 내려올 때는 난간을 꽉 잡고 천천히 모로 걸어 내려와야 했다. 다른 날보다 오늘은 일찍 출근하는 날이어서 (그만큼 퇴근도 빠르다) 계단에 쌓인 눈을 청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집을 나와 만수역까지 가는 동안 쌀가루 같은 고운 눈이 풀풀 날렸다. 바람까지 세게 불어 추위는 한층 매서웠다. 길은 미끄럽고 날은 춥다 보니 행인들은 한껏 몸을 움츠린 채 느린 속도로 엉금엉금 걸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내복을 입고 나와 몸이 춥진 않았다. 다만 찬바람을 정면으로 맞은 얼굴은 역사로 들어갈 때까지 얼얼했다.

 

오늘처럼 춥고 눈 내리는 날에는 전철에 빈자리가 많다. 인천지하철 2호선이 인천대공원역을 경유하다 보니 전철 안은 공원 산책과 관모산 등산을 위해 대공원을 찾는 노인들로 늘 붐빈다. 하지만 오늘처럼 날이 춥고, 특히 눈 내리는 날에는 공원을 찾던 노인들이 낙상을 걱정해 외출을 삼가서 전철은 다른 날보다 무척 한산하다. 사실 나는 시청역까지 세 정거장만 가면 되어서 붐비거나 한산한 것에 대해 그리 신경 쓰지는 않는다.

 

보운 형은 출근하지 않는 날이고 김 목사는 일본 여행 중이라서 오늘은 종일 사무실에서 혼자 근무했다. 이런 날은 음악을 켜놓고 일을 할 수 있어 좋다. 눈은 오전에 그쳤고 점심시간이 지나면서 해도 얼굴을 내밀었다. 대기의 질(質)은 좋음에서 나쁨, 나쁨에서 좋음으로 시시각각 변했다. 아마도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어서 그럴 것이다. 이런 날은 대기의 이동이 잦기 때문이다. 점심은 식당에서 먹지 않고 사무실에 쌓여 있는 각종 견과류와 초콜릿, 에너지 바 등으로 해결했다. 그것만 먹었는데도 전혀 배고프지 않았다. 아마도 종일 앉아서 일을 해 에너지 소모가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별로 강도 높은 노동을 하지 않으면서 삼시세끼를 챙겨 먹는 건 사치라는 생각도 든다.


나의 겨울은 본래 투명하게 빛나는 얼음과 솜털 같은 눈(雪)을 지닌 아름다운 계절이다. 한 해의 시작과 끝, 내가 좋아하는 크리스마스가 겨울 안에 있고, 내가 좋아하는 다양한 색깔의 후드티와 비니, 보라색 머플러를 멋지게 입고 쓰고 두를 수 있는 계절이거든. 오들오들 떨며 들어간 포장마차에서 뜨끈한 어묵이나 콩나물 국물에 마시는 찬 소주는 얼마나 멋진 술꾼의 호사인가?

 

사람들은 겨울이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먼 곳에서 데려온 낯선 바람과 악의 없이 흩뿌리는 소담한 눈발에조차 가끔 몸과 마음을 다친 후 겨울 때문이라며 눈을 흘기곤 한다. 그러나 그건 겨울의 책임이 아니다. 눈 내린 겨울 숲이나 바람 부는 바닷가를 걸어본 사람은 안다. 겨울이 얼마나 많은 표정을 지니고 있으며, 제 품으로 스스로 걸어들어온 사람과 말하고 싶어 하는지를. 그래서 겨울은 자주 사람의 소리로 울거나 웃는다. 겨울은 바람을 연주해 소리를 내고 눈을 뿌려서 우리가 온전한 겨울의 시간 안에 있음을 알리는 친절한 계절이다.

 

이렇게 멋진 겨울이 모질이 하나 때문에 몸과 맘을 스산하게 하는 날카롭고 을씨년스러운 계절이 되었다. 겨울로서는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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