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균열, 은밀하면서 노골적인 (2-6-목, 저녁에 눈) 본문
느껴지긴 하지만 티 나지 않는,
조금씩 조금씩, 느리지만
일관되게 무너지거나 균열이 생기는 중.
그러나 아직은 그 균열의 깊이와 길이,
방향과 강도는 모르는......
그래서 위기감도 없고 변화의 필요성도 인식하지 못하는, 아니 이미 균열이 동반하는 최면에 걸려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지. 다시 말해서 설사 안다고 해도 이미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최면에 깊게 걸린 상태의 의식이거나 생활 방식이거나, 하지만 생활 방식은 결국 의식이 결정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라면 최면에 걸린 생활이 의식을 규정하는가? 전자일 수도 있고 후자일 수도 있으며 둘 다일 수도 있을 텐데......
깊이, 길이, 방향, 강도를 모르는 균열이 지배하는 삶은 도대체 나의 삶인가, 균열의 삶인가? 내 삶이 균열하는 것인가, 아니면 균열이 내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내가 나의 균열을 느낀다면 그건 내 의식의 작용인가, 지배력을 강화한 균열이 나를 비웃는 것인가, 도대체 내 삶에서 균열과 의식의 지분율은 어떻게 나뉘는가? 분명한 건 균열에도 생장과 멸절의 과정이 존재하고, 그 과정에는 가속도가 붙는다는 것이다.
은밀하게 진행 중인 균열을 메우는 방법은 균열을 정확하게 보고, 균열의 원인과 부작용을 생각하며 그 균열 속으로 뭔가를 집어넣거나 아니면 내가 직접 들어가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거든. 균열의 우군인 최면과 중독이 균열의 외관을 정확하게 확인하는 걸 가만히 놔둘 턱이 없잖아. 사람이든 사물이든 대상을 정확하게 본다는 건 그 대상의 내면과 본질 속으로 들어가 (사람이라면) 생각의 흐름과 (사물이라면)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고, 가끔은 대상과 내가 동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보는’(인식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때문이다.
나는 나의 균열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가?
나는 나의 균열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가?
도대체 내 의식 속에서 기생충처럼 커가며
자꾸 날 바보로 만드는 이 균열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 질문들에 대답하지 못한다면 살아도 산 게 아니다.
외화(外華)를 따르지 못하는 내빈(內貧)의 부끄러운 날들이여,
그래서 지금 나는 ‘위험한 짐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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