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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여름은 점점 낯설어지고 (8-19-월, 맑음) 본문

일상

여름은 점점 낯설어지고 (8-19-월, 맑음)

달빛사랑 2024. 8. 19. 22:40

 

여름이 낯설다. 아니 모든 계절이 점점 낯설어진다. 여름은 여름답고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사계절은 모두 각각의 계절답다. 겨울이 여름처럼 덥거나 여름이 겨울처럼 추운 적은 없다. 계절이 그렇게 뒤바뀐다면 그건 재앙의 지구가 보일 마지막 얼굴일 것이다. 다행히 아직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찜찜하다. 찜찜하게 낯설다. 여름은 여름이고 겨울은 겨울인데 두 계절 모두 변덕 심한 애인처럼 도무지 일관된 흐름을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아무 때나 비 오고, 한 마을에 800번의 벼락이 치고, 짧은 시간에 집중호우가 쏟아져 도시는 물바다가 된다. 21세기 첨단 전자 시스템 일기예보가 머쓱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며칠 전 말복 때 엄마 생각하면서 '말복이 지나면 이제 날씨가 시원해지겠지' 생각했는데, 웬걸, 폭염은 마치 나를 놀리기라도 하려는 듯 말복이 지나도 특별한 변화가 없다. 물론 아침저녁으로는 미세한 변화가 감지되기도 하지만, 8월 셋째 주의 날씨, 더구나 삼복이 지난 날씨치고는 과하다. 앞으로 말복과 엄마를 떠올리며 기세가 누그러진 여름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이번주 목요일부터는 한낮의 기온이 5도는 낮아질 거라는 예보가 있는데, 믿고 싶긴 하지만 믿을 수 있을까.

 

후배 시인 조혜영이 을지훈련받으러 교육청에 들렀다며 전화했다. 그녀는 "교육청에 있어요, 형?" 하고 물은 다음 내 대답도 듣기 전에 "우리 끝나고 맛있는 거 먹어요" 했다. 그래서 "일단 끝나고 전화해" 하고서는  통화를 마친 후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딱 떠오르는 것이 냉면이었다. 은준에게 전화해서 백령냉면에 가서 자릴 잡아 놓으라고 부탁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교육을 마치고 내 방으로 올라온 조 시인은 "형, 갈매기에 가서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해요" 했다. 솔직히 오늘은 술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최근 그녀가 모종의 일로 힘들어하는 걸 알고 있기에 일단 그러자고 했다. 5시, 청사를 나가 갈매기까지 걸어가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갈매기에 도착해서도 그녀는 최근 겪고 있는 복잡하고 힘든 일의 경과과정과 자신의 소회, 그리고 향후 계획까지 모든 걸 나에게 담담하게 밝혔다. 유명한 시인의 미투 관련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채 지인들과 문학장 사이에서 내연하고 있는 중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준 후, 나는 선배이자 동료로서 해당 사안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솔직히 말해주었다. 그녀는 고맙다면서, 앞으로 도움 받을 일 있으면 연락하겠다고 했다. 오징어 술찜 안주로 그녀는 소주 한 병, 나는 막걸리 두 병을 마시고 갈매기를 나왔다. 소주를 잘 마시는 그녀였지만 딱 1병만 마시고 일어서자고 한 걸 보면, 오늘 갈매기에 오자고 한 건 술 때문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나도 막걸리 2병이면 적당히 마신 셈이다. 얼마 전 은준과 술 마신 날도 그랬지만, 취하지 않은 상태로, 1차에서 술자리를 끝내는 일은 괜스레 뿌듯하고 스스로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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