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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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치과진료 ❚ 흐르는 겨울의 시 (2-8-목, 맑음)

달빛사랑 2024. 2. 8. 23:15

 

오전에는 다음 주에 집중적으로 열리는 각급 학교 졸업식에서 할 교육감(監) 축사와 영상 메시지 원고를 정리해서 비서실에 넘긴 후 치과에 들러 또 본을 떴다. 오늘은 기공소 소장이 나와서 직접 내 잇몸과 임플란트 식립 상태를 점검했다. 알 수 없지만 뭔가 시술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의치를 착용했을 때 인중 부분이 부자연스럽지만, 이것도 최종적인 조정 단계에서 자연스러워지리라 믿는다. 본래 있던 게 아니라 인공적인 보형물을 삽입한 것이니 완벽하게 자연스러울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본래의 내 모습에 가까워질 수 있다면 좋겠다. 남들이 보기에는 현재의 모습이 훨씬 보기 좋은데도, 어쩌면 내가 오랫동안 이전의 모습에 길이 들어 있어서 임시 치아를 착용한 현재의 상태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건 아닐까? 그러기를 바란다. 어금니로 음식을 씹을 수 있게 되었으니 돈 들인 만큼 효용은 이미 나타나고 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미관까지 좋아지면 더할 나위 없겠지.

 

치과를 나와서 곧장 집으로 퇴근했다. 사나흘 이어질 명절 연휴 전에 갈매기에 들르거나 혁재가 있는 만석동을 찾아가려다 그만두었다. 최근에 자주 과음했고, 그곳을 찾기에는 시간이 너무 일렀다. 대신 밀린 청소와 빨래를 하고 느긋하게 텔레비전을 보며 간간이 지인들이 보낸 문자 메시지에 답장을 해주었다. 그러다 문득 무알코올로 명절과 연휴를 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혹도 만만하지 않겠지만, 보고 싶은 사람은 너무 멀리 있고, 자주 보는 사람은 명절 아니라도 볼 수 있으니, 이번 명절에는 고즈넉이 집에만 있어 볼 생각이다. 사놓고 읽지 않은 시집도 읽고, 쓰다 만 글들도 다시 보면서 명절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사실 매번 그렇게 지내오긴 했지만.

 

적어도 내 방안에서는 겨울의 시간이 유순하게 흐르고 있다. 내 시간이 유순하게 흐른다는 건 누군가의 시간이 그악스럽게 흐른다는 걸 의미한다. 늘 타인에게 빚을 지고 사는 게 인간의 삶이다. 그러니 겸손함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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