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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그리하면 당신은 행복한가요? (1-16-화, 흐림) 본문

일상

그리하면 당신은 행복한가요? (1-16-화, 흐림)

달빛사랑 2024. 1. 16. 10:47

 

 

얼마 전 인천연구원 원장직에서 정년퇴임한 이용식 선배와 후배 상훈, 한오를 만났다.  약속 장소인 인천집으로 가다가 횡단보도 앞에서 이 선배를 만나 함께 약속 장소인 인천으로 향했다. 이 선배는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재작년 지자체 선거 당시 자신의 친구이자 시장 후보인 박 모 후보의 유세 현장에서 본 이후 햇수로 2년 만에 만나는 것이다. 선배는 나이에 비해 무척 젊어 보였다. 오늘 자리는 상훈이가 마련한 자리인데, 이 선배에게 뭔가 할 말이 있던 것 같아서, 가끔 담배 피우러 나가는 한오를 따라 나가 한참 있다 들어왔다. 둘 만의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아마도 사업 관련 이야기이거나 4월에 있을 총선 관련 정보를 듣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나름 추측하긴 하지만..... 아무튼! ❚

 

임시 치아 때문에 표정이 다소 달라졌을 텐데, 후배들은 별 말이 없었다. 내가 임플란트 시술 중이라는 말을 선제적으로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뭔가 부자연스럽지만 내가 민망해할까 봐 일부러 말을 안 한 것일까? 다행히 하루 지나서 그런가 어제보다는 씹는 일이 약간 자연스러워졌다. 물론 여전히 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단단하지 않은 음식을 씹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긴 10여 년 전 부분 틀니를 처음 했을 때도 무척 부자연스럽긴 했다. 다만 지금의 불편함은 (그런 문제가 아니라) 교합 문제임이 틀림없다. 며칠 후 치과에 들러 손 봐달라고 해야겠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인내심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다행이지 뭐. ❚

 

2차로 이자카야 '료'에 들러 사케를 마셨다. 상훈이가 너무 비싼 술을 주문해서 내가 핀잔을 주었는데, 한오가 계산하기로 했다면서 그는 막무가내였다. 사케 맛을 잘 모르는 나는 한오에게 다소 미안했다. 한 병에 8만 원 하는 사케라니...... 아무튼 밍밍한 사케에 미안한 마음을 희석해 마신 후 그곳을 나왔다. 용식 형은 먼저 귀가하고 나머지 셋은 바로 앞집인 라이브 맥줏집에서 3차를 했다. 주인 누나도 잘 알고 2차나 3차로 자주 가는 맥줏집인데, 오늘은 무척 한산했다.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다. 필리핀 가수 제시가 어색한 영어 발음으로 팝송을 부르고 있었다. 상훈이는 앞으로 나가 제시에게 만 원을 건네준 후 그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한오는 혀를 쯧쯧 차며 웃었지만, 나는 상훈이가 소년 같았다. 그때 한오는 불쑥 "나는 형이 참 좋아요. 형은 함께 술 마시는 사람을 기분좋게 하는 뭔가 있어요." 했다. "그래? 고맙네. 나도 너랑 있으면 좋아" 하고 대답해 주었다. 치레로 한 말이 아니었다. 사실이었다. 그는 이혼한 아내와 다시 만나 (혼인 신고 없이) 친구처럼 함께 살고 있다.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지만 흔한 일도 아니어서 그를 만날 때마다 늘 신기하다는 생각을 한다. ❚

 

후배들과 헤어져 전철역까지 걸어오면서 문득 여러 사람을 생각했다. 나를 상처준 사람, 내가 상처준 사람, 동시에 서로에게 상처가 됐던 사람...... 아주 오래전 사랑에 관한 한 나는 이기적이었거나 용기가 없었다.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상대에게만 고압적이었다. 그건 사랑이라고 윤색된 치졸한 갑질이었다. 그래서 어느날 누군가와 이별하게 되었을 때, 나는 아쉬움과 절망감을 느끼는 한편으로 자업자득의 벌을 받는 거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 생각에 빠져 걷고 있으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가끔은 눈물도 났다. ❚

 

언제부터인가 구월동에서 술 마시고 예술회관역까지 걸어오다 보면, 복잡한 연사(戀事)의 주인공이거나 세상의 모든 절망을 떠안고 사는 패퇴한 혁명가처럼 무척 센치해진다. 아마도 적당한 취기에 더해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감상적인 노래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은 술집을 떠나 전철역까지 걸어오는 길, 텅 빈 플랫폼 의자에 앉아 전동차를 기다리는 일, 만수역에 도착해 2번 출구로 나와 역 주변의 술집과 손님들을 바라보며 집까지 걸어오는 길, 현관을 들어서서 화초들에게 인사하는 순간까지의 시간을 의식적으로 즐겼다. 욕실 거울 앞에 서서 "계봉 씨, 이리하면 당신은 행복한가요?" 표정을 바꿔가며 서너 번 묻고 킬킬거리다 샤워하고 일기 쓰고 잠자리에 드는 일이 술 마신 날의 루틴이 되었다. 사랑하는 후배 한오와 훈을 만난 오늘도 예외 없이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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