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나의 내과 주치의는 귀차니스트 (11-15-수, 맑음) 본문
혈압과 고지혈 약을 처방받기 위해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집 근처 내과의 박 원장은 의사치곤 너무 불친절하다. 건강검진 결과지를 앞에 놓고도, 처방전 받으러 한두 달에 한 번씩 병원을 찾을 때도 늘 하는 말이라곤 "음, 괜찮네요."라든가, "오, 좋아요. 지난번과 똑같이 처방해 드릴게요"라는 말밖에 없다. 특히 검사 결과지의 의학 용어들은 전문가의 설명이 필요한데도 그저 "괜찮아요"나 "좋아요"만 반복하니, 가끔은 "뭔 의사가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되풀이합니까?" 하고 쏘아 부치고 싶을 때도 있다. 물론 말없이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가로젓는 것보다는 '좋아요'가 훨씬 낫긴 하지만.
오늘은 정말 역사적인 날이다. "어, 약의 함량도 줄이고 종류도 바꿨는데도 혈압이 괜찮네요. 몸무게도 10kg가량 감량하셨다고요?"라고 길게 말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혈압이 정상이지만, 겨울철에는 갑자기 혈압이 오를 수 있으니 한 달만 더 복용해 봅시다"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이렇게 길게 말한 건 이 병원을 방문한 이래 처음이다. 사실 나도 그럴 생각이었다. 벌써 서너 달 혈압이 정상이기 때문에 단약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지난달에 약을 바꿨으니 다음 달까지 3달 정도 복용하고 난 후 의사와 상의한 뒤 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런데 요즘 혈당이 가끔 많이 치솟아서 걱정이에요."라고 말을 던졌지만, 모니터 속 내 개인 건강 정보들을 묵묵히 바라볼 뿐 언제나 그런 것처럼 내 질문에는 답이 없었다. 경험에 의하면 그 침묵은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현재 수치만으로는 굳이 당뇨약을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라는 의미일 것이다. 혈압측정을 위해 벗어놓았던 파카를 주섬주섬 입으며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진료실을 나왔다. 내 주치의 박 원장, 정말 일관성 있는 의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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