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영양가 없는 부지런함 본문
예보는 있었지만, 밤이 이슥할 때까지 비는 도착하지 않았다. 늦은 밤부터 강수확률 80%라고 하니 적어도 새벽녘에는 분명 비가 이곳에 닿을 것이다. 하긴 그동안 너무 가물었다. 날이 가무니 자꾸 산불만 나고 거리에는 마른 먼지만 풀풀 피어오른다. 여름비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데, 왜 자기 계절이 돌아왔는데도 자꾸 사람 만나기를 망설이며 주뼛거리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자기(비)도 속을 풀고 우리는 시원하고, 장하게 내려주면 얼마나 좋아. 게다가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잖아. 늦더라도 온다니 일단 기다려 보기로 하자.
오늘은 다른 때보다 많이 잤다. 새벽 5시 반쯤 일어났고, 일어나서 방마다 청소하느라 피곤했던 모양이다. 사실 지난 주 내내 몸을 혹사했기 때문에 피로가 누적되기도 했을 것이다. 피곤할 때는 풀어줘야지. 그런 점에서 어젯저녁 후배 장은준이 전화해 동인천에서 술 한잔하자고 했을 때 거절하기를 잘했다. 한 시간쯤 지나서 은준이는, 후배 시인 손 모가 생일이라서 다들 모여 있으니 함께 하자고 재차 연락했지만 그것도 완곡하게 거절했다. 술이 당기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동인천은 너무 멀었다. 한때 나는 장소와 시간 불문하고 술자리에서 부르면 득달같이 달려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체력도 의지도 없다. 무엇보다 3명 이상 마시는 술자리는 부담스럽다.
지금 막 시원한 바람, 이를테면 요 며칠 만나본 적 없는 그런 바람이 방안으로 갑자기 밀려들었다. 방안의 공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비 내리기 전의 전형적인 조짐이다. 이왕이면 잠들기 전에 비가 왔으면.... 그럼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할 수 있을 텐데....
누나가 준 죽순을 씻으면서 엄마 생각했다. 요즘에는 반찬을 만들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엄마 생각이 자꾸 난다. 자반을 먹을 때는 생선 뼈를 발라주던 엄마가 생각나고, 김국을 끓일 때는 말년에 엄마의 아침 식탁을 차리던 나의 모습과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하며 환한 표정으로 식탁에 앉으시던 엄마가 생각났다. 아픈 곳이 있을 때는 생전에 같은 곳을 아파하던 엄마가 생각났고, 세수를 할 때는 거울을 바라보던 엄마가 생각났고, 거실을 지날 때는 혼자서 늦은 밤까지 텔레비전 앞에 앉아계시던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를 혼자 있게 한 적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먹먹해졌다. 엄마 생신이 가까워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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