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두 번째 안과 방문, 날씨 맑음 본문
다시 안과를 찾았다. 오늘에야 내 눈의 증상을 알게 되었다. 각막낭종, 즉 각막에 물집이 잡히는 증상인데, 시력에는 큰 지장은 없고 발생 원인도 뚜렷하지 않다고 한다. 그냥 놔두면 자연적으로 사라지기도 하는데, 물집이 커지거나 이물감이 느껴지면 술술을 통해 물집을 터뜨리기도 한다. 지난주 일단 약을 처방받아 일주일 동안 안약을 넣으며 경과를 지켜봤는데 뚜렷한 변화가 없어 오늘 물리적으로 수술을 했다. 수술 과정은 간단했다. 마취 안약을 넣은 후 가느다란 침으로 물집을 터뜨리는 것이다. 다만 물집이 혈관을 지나고 있어서 수술을 마친 눈은 피가 번져 마치 좀비의 눈처럼 보기 흉했다. 의사 말로는 2주가량 지나야 핏기가 가신다고 한다. 일단 물집을 제거하기는 했지만, 각막낭종은 재발이 흔해서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오늘은 항생제가 포함된 눈약을 새롭게 처방받았다.
나이를 먹으니 이제 몸의 이곳저곳에서 이상징후(사실 이상한 건 아니고 젊은 시절 몸을 함부로 썼으니 당연한 결과겠지만)가 발생한다. 앞으로 병원 갈 일이 더 자주 생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엄마는 참 무던했던 분이셨다. 80에 접어들며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 연세에 신경과와 심장내과 두 군데밖에 없었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다. 다른 곳도 불편하셨을 텐데, 자식에게 민폐가 될까 봐 홀로 고통을 삭인 것이 분명하다. 노인들은 나이가 드시면 아기가 된다고 말들 하지만 우리 엄마는 나이가 들수록 더 깊고 넓고 사려 깊은 어른의 풍모를 보여주었다. 대단한 절제와 인내심의 소유자였다. 이제 내가 엄마가 고통받았던 증상을 하나둘씩 겪고는 중인데, 과연 나도 엄마처럼 의연한 어른의 모습을 보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오늘도 날이 너무 좋았다. 이런 날은 출근길 풍경부터 다르게 보인다. 일찍 출근하는 편이지만 한 달 전만 해도 같은 시간에 나오면 주위가 어둑어둑했는데, 요즘은 낮이 길어져 환하다. 아침이 이렇듯 환하게 열리는 날은 햇볕이 종일 심장마저 간지럽게 살살 긁어댄다. 그러나 이번 주는 역시 여행은커녕 음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눈 수술을 마치고 진찰실을 나오면서 제일 먼저 물어본 말이 (정말 술꾼답게) “선생님, 술 마셔도 되나요?”였다. 내 질문을 듣자, 의사보다도 내 옆에 있던 간호사가 대뜸 “안 돼요. 길게는 2주간 음주는 삼가시는 게 좋아요”라고 대답하며 나섰다. ‘~를 안 하는 게 좋아요’의 의미는 ‘해도 상관없지만’ 안 하는 것이 여러모로 이익이 있다는 말 아닌가. 술꾼은 술꾼답게 자기중심적으로 문장을 해석한다. 그야말로 ‘가능하면’이란 표현이 갖는 다의, 다층적 의미 중 자기에게 유리한 의미만 선별해서 받아들이는 법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다행히 요즘에는 특별한 약속도 없고 술도 예전처럼 자주 마시지 않아 금주하는 건 문제 될 것 같지 않다. 다만 각막의 핏기만은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 눈을 똑바로 뜨면 상대가 섬뜩해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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