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새해 첫 출근 본문

출근 첫날 날씨는 포근하고 하늘은 맑고 공기는 청량했다. 비와 눈은 물론 바람과 안개마저 좋아하는 나조차도 이런 식의 시작은 고무적이다. 10시에 시무식을 했고, 교육감은 별관 1층부터 시작해 본관, 신관의 사무실을 돌며 직원들을 격려했다. 특별 보좌관실에는 11시 25분쯤 교육감이 방문했다. 국장들 대여섯 명도 동행했다. 교육감이 내년 이맘때도 청사를 돌며 직원들을 격려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임기를 다하는 그 순간까지 인천 교육을 위한 고민과 노력을 멈추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슨 일을 하든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무리가 아름다워야 하는 법이다. 나는 그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미력하나마 힘을 보탤 생각이다.
오늘은 교육청에 발생한 여러 건의 위법 사례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날이다. 내가 아는 보좌관 하나도 오늘 징계위원회에 참석해서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그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그가 왜 오늘과 같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는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라는 모 전자제품 CF 카피가 있었다. 그 카피는 배우자나 애인을 선택할 때나 중요한 모종의 선택을 하게 될 때 자주 인용되거나 패러디 되어 회자되어 왔다. 이 카피야말로 최근의 그에게 너무도 맞아 떨어지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왜 그는 그 순간에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일까. 그의 25년 교사 인생을 일거에 바꾸어 버린 어리석은 선택 말이다.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린다면, '뭐에 씌인 것 같은' 그 선택으로 인해 그의 남의 삶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악마는 착한 사람을 더욱 집요하게 유혹하는 법인 모양이다. 결국 그의 온정주의는 방향을 잘못 잡고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으니..... 자신의 실수에 대한 대가는 달게 치르고 앞으로 펼쳐갈 남은 삶 속에서는 웃을 일만 많았으면 좋겠다. 그를 위해 기도한다.
오후에는 영종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화가이자 문화기획자 오 모를 교육청 근처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시장볼 게 있어서 시내에 나왔다는 그는 이전보다 확실히 유순해진 느낌이었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의 말에 의하면 욕심도 없어졌고, 아둥바둥하는 조급함도 없어졌다고 한다. 그의 눈빛과 표정을 볼 때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이제는 오로지 작업(그림 그리기)에 몰두하고 싶다는 그는 조만간 영종도 생활을 정리하고 전라남도 고흥으로 내려갈 계획이라고 한다. 물론 그것도 상황에 따른 변수가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그는 뱉은 말에 대해서는 항상 책임을 졌다. 따라서 오늘 내게 한 말도 우발적으로 나온 말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그 실행 여부나 시점과는 관계없이 그는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고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와 헤어져 다시 청사로 돌아오는 길, 60대로 접어든 내 삶이 갑자기 조급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일모도원! 하고 싶은 일은 무척 많으나 과연 시간이 그 모든 걸 이룰 때까지 과연 나를 기다려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시도도 해보지 않고 지레 겁 먹을 건 뭐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뭔가 미래에 대한 명확한 계획과 의지를 지닌 사람을 만나고 나면 나는 한없이 부럽다. 사실 그의 계획과 의지가 부러운 게 아니라 그걸 이룰 수 있는 제반의 조건을 갖췄다는 사실이 부러운 것이긴 하지만..... 아무튼 자극을 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묘한 질투와 호승심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소중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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