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다시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본문
엊저녁 음주로 속이 거북해 새벽에 일어나 떡라면을 끓여 먹었다. 책상 위에는 주머니에서 꺼내놓은 물건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어제 귀가한 후 간단히 세수하고 발만 씻은 후 쓰러지듯 잠든 모양이었다. 술값을 계산하고 받은 영수증도 반이 접힌 채 놓여 있었다. 어젯밤 갈매기에는 손님이 세 명뿐이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후배 정웅이는 갈매기 ‘내 지정석’에 앉아 당구 게임을 보며 혼자 술 마시고 있었다. 내가 들어오자 자연스럽게 바로 옆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옆 테이블이라고는 하지만 테이블은 바투 붙어 있었고 두 테이블 사이에는 투명한 아크릴 차단막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 영업 마감 시간 1시간을 남겨둔 8시쯤 강 모 화백이 혼자 들어왔다. 합석을 권유했지만 그는 정웅이 옆 테이블에 혼자 앉았다. 손님 세 명이 테이블 하나씩을 차지하고 일자로 죽 앉아 있는 형국이었다. 우리는 '사람이 없을 때는 이렇게라도 테이블마다 따로 앉아 마치 손님이 많은 것 같은 착시 효과를 주는 게 필요하다'라며 웃었다. 사장인 종우 형도 따라 웃긴 했지만 손님이 너무 없어 착잡했을 것이다. 나는 세 테이블 술값을 모두 계산하고 정확하게 9시에 갈매기에서 나왔다.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술집 마감 시간이 당겨진 탓에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도 거리는 무척 북적였다. 택시를 타고 올까 생각하다가 음악도 들을 겸해서 전철을 타고 왔다.
오전에는 빨래하고 청소하고 안 입는 옷가지를 정리해서 내놓았다. 점심에는 떡국을 먹었고 저녁에는 누나가 사다 놓은 갈비탕을 먹었다. 갈비탕 국물을 마시자 남은 숙취가 말끔하게 사라졌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숙취를 느끼지는 않지만, 어제는 점심 한 끼만을 먹고 술을 마셔서 그런지 배가 고팠고 속이 쓰렸다. 그리고 좀처럼 보지 않던 뉴스를 몰아보느라 책을 한 페이지도 읽지 못했다. 그동안 뉴스를 보면 스트레스가 너무 쌓여 의식적으로 보지 않아 왔는데, 최근 급변하는 정치 상황은 뉴스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자당의 대선 후보가 너무도 함량 미달의 모습을 보이자 야당 선거 대책본부 관계자들이 무척 긴장한 모양이다. 상대 당의 후보 역시 그리 참신하거나 도덕적이지는 못하지만, 야당 후보의 무지와 오만, 편견과 부도덕함, 거짓을 일삼는 태도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던 야당 후보는 지지율이 급락하고 선두도 빼앗겼다. 급기야 외부에서 영입한 팔순의 총괄 선대본부장은 선대본 해체를 선언하며 후보에게 “제발 우리가 연설문을 작성해 줄 테니, 후보는 시키는 대로 연기만 해달라”라는 주문을 하기에 이르렀다. 한 나라의 대선 후보에게는 치욕이자 모멸일 수 있는 이러한 주문에 대해 해당 후보는 묵묵부답의 모습을 보여 그의 열성 지지층을 아연하게 만들고 있다. 사실 그의 묵묵부답은 총괄본부장의 조치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아무튼 김 아무개 총괄본부장의 조치에 따라 중간에 영입된 철새 정치인들과 권력에 기대 반사적 이익을 도모하려 했던 어중이떠중이 인사들 또한 어쩔 수 없이 줄줄이 사퇴 선언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들과 정치적 견해가 다른 나로서는 이러한 그들의 자중지란이 한편으로 고소하고 한편으로 씁쓸하다.
뉴스를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은 ‘저들’의 지리멸렬과 자중지란 소식 때문이다. 결과는 장담할 수 없고 남은 기간 안에 또 다른 변수가 발생하지 말란 법은 없지만, 전제군주 성향의 초보 정치인인 그가 (사실 그는 제대로 된 정치적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 현재로서는 권력을 잡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은 나에게 무척 고무적이다. 그를 당선시키는 것은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만천하에 알리는 일이자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드러난 정치판의 현실은 그 수준과는 무관하게 당분간 그 어떤 드라마나 코미디 영화보다도 재밌을 것 같다. 삼류 코미디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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