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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약속시간을 기다리는 방법 본문

일상

약속시간을 기다리는 방법

달빛사랑 2021. 7. 14. 00:50

 

정치가는 거짓말로 살고 건달은 주먹으로 살고 목사님 신부님 스님 중 일부는 신앙으로 살고 스님 신부님 목사님 대부분은 거짓말과 탐욕으로 살고 작가는 작품으로 살고 시인은 시로 살고 교육가는 교육으로 살고 재벌은 착취로 살고 노동자는 피땀으로 살고 내 친구들은 골프와 부동산으로 살고 누나는 약으로 살고 미경이는 책과 봉사로 살고 유경이는 핀이 나가 살고 우리 동네 슈퍼 아줌마는 수다로 살고 미용실 아줌마는 소문으로 살고 술집 사장들은 호구들 때문에 살고 경희네는 손님들로 살고 종우 형은 막걸리로 살고 혁재도 막걸리로 살고 음악으로 살고 명수는 강아지 해피로 살고 내 책상 위 난초는 물과 관심으로 살고 모기는 내 피로 살고 거미는 모기로 살고 나는 무엇으로 사냐고? 나야 뭐 빈둥거림과 끄적거림으로 살지 엄마는 기도로 사셨는데 그 기도의 습관을 나도 갖길 바라셨는데 나는 기도의 대상이지 주체는 되지 못하고 미안하지만 아쉽지는 않아 하나님 부처님 알라 성모님은 무엇으로 사실까나 가끔 인간의 믿음과 신념과 복종으로 살고 자주 배신과 신음과 비명과 울부짖음을 음악으로 듣곤 할 걸 아니라면 세상이 이럴 리가 없잖아 안 그래? 나도 가끔 사람들이 무엇으로 사는지 궁금하긴 해 하지만 알 것도 같아 물어보진 않아 꽃들은 새들은 저 이름 없는 풀과 나무들은 무엇으로 사는지 모르는 사람이 어딨겠어, 안 그래? 공기로 살고 물로 살고 볕으로 살고 보살핌과 위로로 살고 그러고 보면 나랑 다를 것도 없어 가끔 나는 그냥이라는 단어를 만나는데 이 단어가 너무 좋아 그냥 좋아 그냥, 사전적 의미는 정확히 모르지만, 아무 바람이나 대가 없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마음이겠지 쓰임도 용례도 많아 기분 상태를 대답하는 말로도 쓰일 수 있고 어떤 행동의 이유를 밝히는 데 쓰이기도 하잖아 ‘그냥 좋고 그냥 맛있고 그냥 사랑했고 그냥 짓밟았고 그냥 도와줬어’라고 쓸 수 있는 말,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단어는 정말 무책임한 단어이기도 한 거 같아 그냥이라니 자신을 자신이 모른다는 건 무책임한 거잖아 좋은 일에 ‘그냥’을 쓰면 넉넉한 마음의 표현이 되고 나쁜 일에 이 단어를 쓰면 매우 무책임한 마음을 표현하는 게 되니 아무튼 그냥은 요망한 단어이긴 한데 그나저나 지금 나는 왜 이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누가 물으면 몰라 그저 약속 시간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죽이고 있는 거야 하고 대답하겠지 단어의 연상은 재밌어 희한한 게임이야 이제 시간 다 됐다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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