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엄마의 접란, 그 파란만장한 이력 본문

미세먼지가 온 도시를 점령한 날이다. 미세먼지 어플은 종일 ‘최악, 절대 나가지 말 것’이라는 경고 팝업을 시간 단위로 띄웠다. 비번인 날은 시장을 보거나 영화를 볼 뿐 집안에 콕 박혀 있어 먼지 마실 일은 드물지만, 봄을 맞아도 문을 활짝 열고 환기할 수 없으니 그것이 답답할 뿐이다. 다만 기쁜 것은, 엄마의 접란이 오늘도 손톱 크기의 꽃을 수줍게 피워 올렸다는 것이다. 여느 꽃의 개화보다 접란의 개화는 경이롭기 그지없다. 쉽게 꽃을 보여주는 화초도 아닌데 우리 집 접란은 엄마 가신 뒤로 벌써 세 번이나 꽃을 피워 올렸다. 뭔가 ‘걱정하지 마라. 나는 잘 있다’라는 엄마의 전언 같기도 하고, ‘힘든 너에게도 꽃처럼 화사한 날이 올 거야.’라고 나를 격려하려는 몸짓 같기도 하다.
사실 이들 접란은 민예총 사무실에서 침과 담배꽁초, 온갖 쓰레기를 몸에 받으며 죽어가던 아이가 낳은 자식들이다. 오래 방치된 채 갖은 모멸을 견디면서도 최후의 숨을 놓지 않고 있던 이 아이들의 엄마를 발견한 것은 우연한 일이다. 커피 찌꺼기나 마시다 남은 물을 사람들은 무심코 접란의 화분 위에 버리곤 했는데, 그 물을 자양으로 힘겹게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던지 어느 날, 시들고 말라버린 잎들 사이에서 푸릇한 새잎이 나오는 걸 발견했다. 당장 화분 위의 오물들을 제거하고 고사한 잎들을 솎아낸 후 꾸준히 물을 주고 다독였더니 보름쯤 지나면서 제법 푸릇한 잎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일단 관심을 받기 시작하자 엄마 접란은 놀라울 정도로 쑥쑥 자랐고 어느 날부터 길고 긴 꽃대를 만들며 아기 접란을 잉태하기 시작했다. 나는 버려진 화분을 깨끗이 닦은 후, 공원 근처에서 구해온 흙에다 아기 접란을 심어주었다. 그것이 또 빠르게 성장하며 꽃대를 내밀어 3년 사이에 증손, 고손을 만든 것이다. 사무실에는 점점 화분이 늘어간 건 당연한 일이다.
상임이사의 임기가 끝나고 비품들을 집으로 가져올 때, 길에서 주워온 항아리에서 커가던 아이 하나를 가져와 엄마에게 주었다. 엄마의 지극한 사랑을 먹고 커가던 그 아이가 3년 사이에 또 여러 아이를 만들었고, 최근 ‘방계 혈족’ 모두가 보기 드물게 일제히 꽃을 피워 낸 것이다. 사무실에 있을 때는 잘 자라긴 했지만 좀처럼 꽃을 볼 수 없었는데, 엄마의 사랑을 받은 접란들은 한 달 사이에 벌써 세 번째 꽃을 피워 올린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대견하면서 경이롭겠는가. 잊지 않고 물만 주면 까탈스럽지 않고 수더분하게 쑥쑥 잘도 자라는 접란이 고마울 수밖에. 엄마 계실 때도 이렇듯 자주 꽃을 보여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코로나에 미세먼지, 아픈 다리 때문에 좀처럼 외출하지 못하는 엄마에게 접란과 고목 나무, 재스민, 소국 등등의 화초들은 그야말로 친구이자 자식 같은 존재들이었을 것이다. 그중 접란은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야 비로소 꽃을 보여주기 시작했으니 꽃을 좋아하던 엄마를 생각하면 그것이 다소 아쉬운 것이다. 그래서 더욱 피어나는 작은 꽃을 엄마의 전언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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