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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초대받지 않은 방문객들 본문

일상

초대받지 않은 방문객들

달빛사랑 2021. 3. 12. 00:19

 

점심시간 지나서 교육감 면담을 부탁한 후배를 교육감에게 인사시키고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이번 면담은 사업지원을 부탁하는 면담이 아니었으므로 분위기는 무척 화기애애했다. 후배는 그간 구상했던 마을교육지원 사업에 대한 포부와 실제 우리 교육청과 협업으로 진행한 사업의 성과를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약 20분간 대화를 나눴는데, 찾아온 후배나 만남을 수락한 교육감이나 모두 개운한 표정들이었다. 요즘 부하직원의 일탈이나 인권 조례 문제로 맘고생이 많은 교육감으로서는 곤란한 민원을 들고 찾아온 방문객이 아닌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을 것이다.

 

후배는 얼마 전 코로나로 인해 운영난을 겪던 학원을 정리했다. 학원 밥을 27년이나 먹은 후배로서는 시원섭섭했을 것이다. “이번 월요일, 모든 걸 정리했어요.” 하길래, “서운하지 않던?” 하고 물으니 “정리한 당일과 자고 일어난 다음 날에는 솔직히 마음이 심란하더군요.”라고 대답했다. 30여 년 가까이 사교육 현장에서 청장년 시절을 보냈으니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정리해야 할 시점에 정리를 감행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워낙 많은 사람이 얽혀 있다 보니……. 하지만 이제는 홀가분해요. 앞으로 인문학 공부와 강좌 개설에 역량을 집중해 보려고요.”라고 말하며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호탕하게 웃는 후배를 보며 안타까움과 다행스러움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이 일었다. 모쪼록 새롭게 펼쳐갈 후배의 미래가 건강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내가 도울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기꺼이 도와줄 생각이다.

 

후배가 돌아가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말쑥한 차림에 사무적인 말투를 구사하는 중년 사내 한 명과 서류철을 옆에 낀 여자 한 명, 그리고 뺀질뺀질하게 생긴 젊은이 한 명이 특보실 문을 불쑥 열고 들어왔다. “누구세요?”하고 묻기도 전에 중년 사내가 “남동경찰서 형사입니다. 여기가 보좌관실인가요?” 하고 물어왔다. “아니요. 여기는 특보실이고 일반 정책 보좌관실은 비서실 맞은편에 있습니다. 왜 그러시죠?” 하고 물었더니 방문 이유는 말하지 않고,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며 문을 열고 나갔다. 그들이 나간 후에 퍼뜩 짚이는 게 있어 슬며시 따라가 봤더니 예의 그 경찰들은 비서실 보좌관들의 컴퓨터를 살펴보고 있었고 또 한 명의 새로운 얼굴이 압수한 물품을 담아갈 서너 개의 견고한 플라스틱 상자(PC는 우리가 늘 뉴스에서 보던 파랗게 생긴 비닐 상자에 담는 게 아니라 따로 담아가는 상자가 있는 모양이었다)를 발 옆에 세워둔 채 엉거주춤 서 있었다. 당황한 비서들과 직원들이 황당한 표정으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비서실에서 용무가 끝나자 그들은 초등교육과 사무실로 우르르 이동했다. 특보실에 와 있던 보좌관들도 심란한 표정으로 모두 옥상으로 올라가 담배를 피우며 사태의 추이를 주시했다. 불청객들의 압수 수색은 퇴근 무렵까지 계속됐다. 오늘은 미래를 책임질, 학생 교육의 정책과 실천 단위인 교육청으로서는 치욕스러운 날로 기억될 것이다. 다시금 이런 치욕을 경험하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빗나간 욕망이나 원칙을 벗어난 호의는 이렇듯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날이다.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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