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인간관계의 볕과 그늘 본문
거미줄처럼 얽힌 인간관계라서 변수가 많다. 재밌는 일도 있고 마뜩잖은 일도 있다. 다행히 재밌는 일과 마뜩잖은 일의 비율이 6대 4라서 갑작스레 만나는 상황을 나는 대체로 수긍하는 편이다. 생각해보면 얼마 전까지도 나는 가슴이 쿵 내려앉는 일을 수도 없이 겪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암담했던 적도 많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기는 거지?’ 하는 일들이 쉴 새 없이 닥쳐서 자포자기 심정이 되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재미없는 일들은 하나둘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고 황당한 일에도 내성이 생겨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체로 문제는 나로부터 기인한 것들이었다. 나와는 관련 없어 보이는 일들도 따지고 보면 연줄연줄 얽혀 있는 내 인간관계로부터 파생된 것들이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된 것이다. 나와 관련이 없는 일로 겪은 상당수의 곤혹스러움을 아이러니하게도 역시 나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으로 인해 해결할 수 있었는데, 그때는 의아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직접이냐 간접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거미줄처럼 얽힌 내 인간관계의 시스템이 작동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엄마는 심각한 문제를 홀로 해결하는 나를 보며 “역시 사람은 발이 넓어야 해. 그것 봐라. 너도 친구가 많으니 도움을 받게 되잖니? 넌 어릴 때부터 친구가 많았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리고는 “네가 그 친구들에게 뭔가 잘하고 많이 베풀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도 지금 너를 도와주는 거지. 네가 그렇지 않았는데도 그 사람들이 널 도와줄 성싶으냐?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얘기지.”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아들에 대한 지극히 일방적인 믿음이 전제된 말씀이셨겠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렇겠지요.” 하며 엄마 말씀에 수긍을 해드렸다. 엄마의 말씀이 백 프로 옳기 때문이 아니라 아들에 대한 엄마의 믿음을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생을 살면서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많이 겪은 나는 관계의 볕과 그늘을 모두 경험한 셈이다.
컨디션이 썩 좋은 건 아니었지만, 월요일이라서 습관적으로 갈매기에 들렀다. 뜻밖에도 조구 형이 와 계셨다. 영화감독 하명종 씨가 동석하고 있었다. 월요일에는 갈매기에 나오지 않는 형인데, 아마도 하 감독과의 약속 때문에 나오신 듯 싶었다. 늘 내가 앉는 자리에는 후배 시인 김산이 앉아 있었다. 혁재에게 연락해 갈매기에서 만나기로 했던 모양이다. “혁재? 혁재가 온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반가우면서도 속으로 ‘벌써 술을 마셔도 되는 걸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도착한 지 30분쯤 지나서 하 감독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고 조구 형은 우리 자리에 합석했다. 다시 30분쯤 지나서 혁재가 도착했다. 수척해지긴 했지만, 다행히 병색이 완연하진 않았다. 아직 알 박인 종아리가 불편한 듯 살짝 건드려도 통증을 느끼곤 했다. 한 시간쯤 지나서 조구 형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시고 한 40분쯤 지나서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산이는 계속해서 혁재에게 도원동에 가자고 졸라댔다. 혁재는 “거기는 뭐하러 갈려고 해. 걔도 피곤해. 이해할 수 없네.”라며 난색을 표명했다. 술값을 계산하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현금 5만 원을 꺼내 산이와 혁재에게 주면서 “술 마시지 말고 늘 가는 모텔에 가서 일찍들 자라.”라고 말을 했는데, 그 돈을 가지고 실제로 모텔에 갔는지 술을 더 마셨는지는 알 수 없다. 술을 더 마셨을 가능성이 8할 이상이다. 산이가 마음 약한 혁재를 힘들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산이도 외로우니 인천에 내려와 늘 편하게 대해주는 혁재를 불렀을 것이다. 그 역시 거미줄 같은 관계망 속에서 파생적으로 알게 된 후배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그의 외로움보다는 구체적 통증을 안고 있는 혁재가 훨씬 걱정됐던 게 사실이다. 두 후배 모두 따뜻한 밤을 보내기를 바랄 뿐이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식 (0) | 2021.03.10 |
---|---|
도둑들의 나라, 혁명이 필요한…… (0) | 2021.03.09 |
봄을 먹다ㅣ엄마의 접난이 다시 꽃을 내밀다 (0) | 2021.03.07 |
라디오가 친숙해지기 시작했다 (0) | 2021.03.06 |
술자리가 재미가 없다 (0) | 2021.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