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라디오가 친숙해지기 시작했다 본문
YouTube에서 열여덟 시절 가수 아이유가 ‘Video killed radio star’를 부르는 영상을 우연히 보았습니다. "오아, 오아!" 다음에 노래 제목이기도 한 킬링포인트가 이어지는 이 팝송을 미성의 소녀가 부르니 분위기 새로웠습니다. 그녀의 노래를 따라부르다가 문득 오래전 라디오와 동거했던 한 시절이 떠올라 잠시 추억에 젖었습니다. 청소년 시기는 거의 라디오와 한몸이 되어 지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생일 선물로 사주신 독수리표 세이코 더블데크 카세트는 사춘기 시절의 질풍노도를 다독거려주고, 소년의 감수성을 훼손하지 않은 채 원형 그대로 보존할 수 있게 해준 유력한 힘이었습니다. 음악 프로그램을 청취하면서 새한 미디어의 스마트 공테이프에 좋아하는 노래들을 녹음하기도 하고 ‘밤을 잊은 그대에게’나 ‘별이 빛나는 밤에’, 서금옥의 ‘키 작은 코스모스’ 등의 방송을 들으며 사춘기의 거친 감정의 휘오리를 순정하게 지킬 수 있었던 것이지요. 특히 시험을 망쳐서 기분이 우울할 때, 여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엄마에게 혼났을 때, 비가 올 때나 눈이 올 때는 늘 카세트와 라디오, 녹음된 테이프들이 가장 맘에 와 닿는 위로를 해주는 내밀한 친구였습니다. 요즘에는 휴대폰이나 MP3, PC로도 좋은 음질의 음악과 FM 라디오를 들을 수 있어 방송을 접하기가 한결 편해졌지만 이전처럼 라디오를 자주 듣질 않습니다. 시각과 청각을 결합한 영상 콘텐츠들이 워낙 미디어 세계를 압도하기 때문에 이제 사람들은 아날로그적인 라디오 감성에 더는 매료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전화로 영상 통화가 가능해진 세상에서 청각에만 의존하는 라디오는 어쩌면 특정 기호를 가진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되어 버린 느낌입니다. 하지만 라디오는 텔레비전보다 확실히 추억의 기기이자 감성적인 미디어입니다. 오늘, 지금은 유명 뮤지션이자 디바가 된 한 여성 가수의 소녀시절 영상이 내 가슴을 격동시켰습니다. 나에게도 음악의 선율에 따라 울고 웃던 시절이 있었음을 떠올렸던 것이지요. 그래서 라디오 어플(CBS 레인보우, KBS 콩, SBS 고릴라, MBC 미니 등)을 모두 다운받아 설치했습니다. 앞으로 심야시간에는 넷플릭스나 유튜브보다 라디오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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