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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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소리로 가득한 집이었으면

달빛사랑 2020. 9. 20. 00:01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다. 엄마보다 일찍 일어났기 때문에 집안은 고요했다. 집안에 생명을 불어넣고 소리를 채우는 것은 엄마의 몫이다. 엄마가 집에 없으면 집안에서 정겨운 소리가 사라진다. 집안의 사물들도 그걸 알기 때문에 엄마와 함께 잠이 들고 엄마와 함께 일어난다. 엄마는 기상하면서 마법사처럼 모든 소리를 깨운다. 그 모든 소리 중 하찮은 소리란 없다. 텔레비전 소리도 욕실의 수돗물 소리도 주방에서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도 엄마의 슬리퍼 소리도 엄마가 깨우면 비범한 소리가 된다. 엄마에게 말을 거는 소리가 되었다가 엄마의 말을 들어주는 소리가 되기도 한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안심한다. 엄마가 나의 소리도 깨워주었으면 좋겠다. 아니 내 쪽에서 먼저 엄마 곁을 지키는 소리가 되고 싶다. 생각해 보면 나는 별로 엄마에게 소리를 내지 않는다. 밥도 따로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혼자 일을 할 때는 내가 내는 소리가 엄마에게 닿는 것을 방문이 가로막는다. 집밖에서는 타인들에게 그토록 많은 ‘소리’를 풀어놓던 내가 집에만 오면 갑자기 조용해진다. 이해할 수 없다. 못된 침묵이고 서운한 침묵이고 상처가 되는 침묵이다. 소리가 사라진 집이 얼마나 을씨년스러운지 나는 잘 알고 있다. 그게 싫어서, 아니 소리가 그리워서 나는 잠을 잘 때도 텔레비전이나 유튜브를 켜놓고 잠을 자곤 한다. 사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잠을 못 잔다. 빈집의 적요가 얼마나 사람을 쓸쓸하게 만드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엄마를 소리 없는 집안에 종일 방치해 왔다. 그 스산함을 알면서도 나는 소리를 가두고 적요로 집안을 채우고 있으니 얼마나 잔인한 무심함인가. 얼마나 가혹한 무관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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