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영화를 보다('엑시트') 본문
오전에 비가 내렸고, 그것도 멈추지 않고 내렸고, 대기는 찜통 같았으며 월요일이었다. 월요일은 갈매기 가는 날. 비와 갈매기, 잘 어울리는 조합 아닌가.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날은 덥고 어차피 저녁에는 갈매기에 앉아 있을 게 뻔한 일이고…… 하여 영화를 보기로 했다. 오컬트 영화인 ‘사자’를 보려고 했으나 비오는 날 보기에는 너무 칙칙할 것 같아서, 조정석과 임윤아가 주연한 ‘엑시트’를 보았다. 입소문은 듣고 있었지만 단순한 오락영화가 아니었다. 관객은 물론 평론가들의 평점이 좋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시종일관 뛰고 매달리고 건너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달리고 건너뛰는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어쩌면 출구 없이 숨통만 조여 오는 헬조선 속 힘겨운 청춘들의 전형이라 하겠다. 이러한 영화적 형상화를 통해서 감독이 보여주려 했던 것은 어느 평론가의 말마따나 사회적 압박에 짓눌려 제대로 뜀박질 한 번 못 해본 동시대 젊은 세대에게 땀내 나는 성취 한 번을 안기려는 시도였을 지도 모르겠다. 졸작만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다가 의외의 명작을 만난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배우 임윤아의 재발견이다. 이 영화 한 편으로 그녀에게 따라붙는 편견과 연기에 대한 폄하는 잠잠해질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이 땅의 꼰대들에게도 관람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영화가 끝나고 갈매기에 들렀는데, 비가 내렸기 때문인지 조구 형은 없었다. 대신 후배들과 전교조 선생들이 먼저 와 있었는데, 그 중 안 모 선생이 민어를 사줬다. 민수와 주연이 커플은 여주로 이사를 갈 모양이고 안 선생은 사진수필집을 출간할 계획이라서 바쁘다고 했다. 막걸리 두 병을 마신 후 귀가하려다 술집 앞에서 만난 귀현 형과 갈매기에 다시 들어와 소주 한 병을 더 마신 후 함께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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