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여행을 떠나리라 본문
나와는 무관하게 돌아가는 세상의 저 천연덕스러움이 나는 두렵다. 가을은 나를 더욱 겸손하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고문 기제들을 들이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갑자기 싸늘해진 날씨에 단풍도 지금은 끝물일 것인가. 아직 무료한 사내의 심장에 붉은 빛을 나눠주려는 마지막 단풍의 안간힘이 남아 있을까. 피부는 탄력을 잃고, 기억력은 쇠퇴하고, 눈은 자꾸만 침침해져 오는 장년의 가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대한 갈구는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비루한 욕망이여.
외로움은 사치다. 나는 외롭지 않다. 특별한 일만 없다면 나는 일 년 내내 내 방에서 머물며 외출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치사한 세월. 그 세월에 순치되는 내 알량한 육체. 그러나 용서할 수밖에 없다. 당분간 나는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몸을 함부로 내돌릴 수 없는 처지다. 몸이 내 정신을 배반하는 순간 아직은 낭패를 보게 되는 것은 정신 쪽이니까. 지금의 이 지난한 작업이 끝나면 반드시 여행을 떠날 것이다. 연골 닳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어느 이름 모를 도시의 허름한 여인숙에서 잠이 들지라도 그것은 내 피학적인 영혼은 그 쓸쓸함을 무척이나 즐길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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