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서은미 사진전 '강화 소창 이야기-무녕'(선광갤러리) 본문
“(……) 사진은 무엇보다 시간을 담는 예술입니다. 한 시대의 시간을 분절하여 정지된 영상으로 기록하는 기록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작가가 오늘 찍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 풍경, 거리는 모두 다 나름대로의 역사성과 사실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진작가는 또 다른 의미의 역사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따라서 사진작가가 무엇을 기록하려고 했을 때 거기에는 사진작가의 의도와 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따라서 객관적인 사진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피사체를 선택하는 순간 이미 작가의 가치판단이 개입하고 있는데 어떻게 객관적인 사진이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서은미 작가는 도대체 왜 소창 장인(匠人)인 노부부의 일생과 그들이 여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평생의 작(직)업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선택했던) 것일까요. 그것도 빛을 그리는 예술가인 사진작가가 말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리움과 연민 때문이었을 겁니다. 빛을 갈무리하여 세상의 풍경과 인간의 삶을 다양한 모습으로 담아온 작가로서 ‘사라져 가는 빛’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 그리고 그 빛이 황홀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었을까요.
(……) 수직기 앞에서 손금이 지워지도록 북을 놀리며 세상에 대한 한스러움을 씨실로 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가는 아이들에 대한 기대와 가족에 대한 사랑을 날줄로 삼으며 한 땀 한 땀 피륙을 완성했을 강화의 이름 없는 숱한 장인들, 그들의 치열한 삶이야말로 기록하고 전하고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서민들의 핍진한 삶이었을 것이라 작가는 여겼던 것이겠지요.
중장년 세대는 생생하게 기억할 것입니다. 아이가 새로 태어난 집이면 어김없이 빨랫줄에서 힘차게 펄럭이던 흰 듯 누른빛의 소청들의 몸짓을. 그것은 약동하는 생명력의 표상이었고 새로운 세대에 대한 기대이자 자부였습니다. 소창은 또한 우리네 삶의 지근거리에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기도 했고, 마을을 벗어나는 친지들에게 꼭 다시 만나자는, 혹은 전도가 부디 무탈(無頉)하라며 흔드는 허다한 손들에 매달려 하늘거리던 우리들의 젖은 마음을 표상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관곽(棺槨)의 둘레에 칭칭 동여매진 채 누군가의 영별을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소창은 우리가 태어나서 흙속으로 돌아갈 때까지 평생을 우리와 함께 했던 친근한 서민의 피륙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소창의 흰빛은 점점 우리 곁에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소멸하는 것들은 모두 애잔한 법입니다. 그 사라져가는 고유한 빛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빛의 예술가’인 서은미 작가는 카메라를 들었던 것이겠지요. 그것은 단순히 한 장인의 삶을 아카이빙 하는 것이 아니라 강화를 기반으로 꾸려졌던 한 시대의 삶을 보존하는 것이었을 겁니다. 사라져가는 과거의 빛을 ‘빛의 예술가’가 다시 온전한 빛으로 되살려내는 것, 되살려 추억하고 추억하며 역사적 사실로 기억하게 하는 것, 기억해서 이어받고 이어받아 화양연화 시절의 꿈들을 복원하는 것, 그것이 아마도 서은미 작가의 궁극의 바람이자 이 지난한 작업에 뛰어들게 되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문계봉(시인)의 ‘소창, 그 흰색에 담긴 삶의 정조와 그리움을 복원하다’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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