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달에게 소원을 빌다 본문
허기를 느끼며 잠에서 깼다. 간단하게 밥을 먹고 새로 밥을 안쳤다. 청소를 끝내도 동생네 가기에는 시간이 일렀다. 그래서 추도예배 순서지를 가족 숫자만큼 복사를 했다. 그나저나 명절음식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아침을 걸렀어야 하는데 왜 뜬금없이 허기가 몰려왔는지 모르겠다. 요즘 자주 허기를 느낀다. 마음의 허기가 육체적 허기를 불러오는 법인가? 내가 딱히 마음의 허기를 느낄 일이 무에 있다고.
정확하게 9시, 연수동에 도착했다. 먼저 와 계셨던 어머니와 아들 그리고 조카들이 맞아주었다. 아들은 약간 살이 올랐고 까맣게 탄 얼굴이었다. 아마도 여행 탓이었을 것이다. 공무원 임용은 현재 사법부 적폐 청산 문제 때문에 업무가 마비되어 예상보다 다소 늦을 것 같은 모양이다. 아들은 그 동안 읽고 싶었던 책도 읽고 여행도 다닐 수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반응이었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니 두 시. 어머니, 나, 아들 모두 낮잠을 잤다.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꿈을 꾸며 그렇게 두어 시간을 보냈다. 저녁나절, 아들은 약속이 있다며 집을 나갔고 어머니와 나는 말없이 텔레비전을 보았다. 간간히 “수현이에게 용돈 좀 줘라. 부모는 그래야 하는 거다.”라는 말씀을 알람처럼 하셨다. 나 역시 “걱정하지 마세요. 넉넉하게 줄게요.”라고 알람처럼 대답했다.
조금 전 천안의 후배로부터 “달이 얼마나 밝은지 몰라. 달을 좀 봐봐”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테라스로 나가봤더니 정말 맑고 깨끗한 보름달이 휘영청 하늘에 떠 나를 내려 보고 있었다. 나는 한참을 올려다보다가 서너 가지 소원을 빌었다. 물론 어머니와 천안 후배의 건강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 뭍사람들의 소원을 접수해야하기 때문에 달님도 오늘은 무척 바쁠 것이다. 나와 관련된 소원은 양보할 수 있지만 첫 번째 소원은 꼭 들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