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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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이전투구를 바라보며

달빛사랑 2017. 8. 29. 23:30

이사회가 있어 문화재단에 들렀을 때, 후배로부터 장문의 문자가 전달되었다. 재단의 사무처장 선임과 관련한 시민연대의 성명서였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사들에게도 발송된 모양인지 내 옆에 앉아 있던 인하대 김 모 교수도 돋보기를 갈아 쓰고 그 성명서를 읽고 있었다. 성명서의 내용을 꼼꼼하게 읽어 내려가면서 나는 약간 두려워졌다. 그 성명서가 시민연대 스스로 작성해서 발표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성명서 문구 중에는 지난 7월 발표했던 인천민예총의 성명서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7월의 성명서는 내가 작성했기 때문에 내가 쓴 문장을 못 알아 볼 리 만무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재단과 시, 그리고 현 재단의 대표이사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가 작성하고 발표 주체에 시민연대 간부들의 이름만 명기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집요한 적의에 대해 섬뜩한 생각마저 들었다. 문제가 있는 누군가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정정당당하게, 정확한 사실을 중심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것이지 몰지각한 정치세력들이 일삼는 편법과 마타도어를 이용하는 것은 도덕적 정당성이란 면에서 이해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쓴 글의 일부가 그렇게활용됨으로써 결과적으로 나도 그 편법과 마타도어에 공동정범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여간 씁쓸한 게 아니다.

 

만약 선거를 앞둔 현 시장 측에서 재선을 염두엔 둔 포석의 일환으로 문화재단에 대한 인사에 개입한 것이거나 대표이사가 시장의 복심을 알아서 받드느라 재단 운영에 있어 전횡을 일삼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분명 비판받아 마땅하다. 재단은 시장의 것도 재단 대표이사의 것도 아니고 바로 시민의 것이기 때문이다. 옳지 않은 것에 대해서 나는 언제든지 비판과 저항을 전개할 용의가 충분히 있다. 그러나 그들을 비판하는 세력들이 힘의 관계를 역전시켜 반사적 이익을 얻으려고 뭔가를 도모하고 있다면 나는 결코 그것에 동의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전횡을 일삼는 그들이나 편법으로 그들을 비판하는 비토세력들이나 도대체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편법은 또 다른 편법을 낳을 뿐이다. 그리고 정치적 입장이 다른 시장을 구축하고 비교적 민예총과 우호적인 시장을 당선시킨 뒤 새로운 시 정부로부터 뭔가의 이익을 요구하려 한다면 그것은 결코 예술가들이 할 행동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진정 인천 문화와 예술의 발전을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비판도 실천도 문화와 예술의 기본 가치에 부합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과 그 사태를 해결하려는 내 주변의 방식은 전혀 문화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실망과 좌절을 안겨주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명색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혹은 그와 관련한 일에 종사한다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란 게 고작 부도덕한 정치인들의 행태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라니 인천 문화예술계의 앞날이 여간 우려스러운 것이 아니다. 물론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나 힘의 관계는 존재하는 것이고 자신의 실천과 이념적 지향이 옳다는 것을 강변하기 위해 일정한 세와 권력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정말 이것이 인천 문화 예술계 인사들의 민낯이라면 나는 미련 없이 이 판을 떠날 것이다. 최근 문화재단의 사무처장 및 본부장 인선을 앞두고 발생한 구설수들도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비통스러운 일인데, 그들을 비판한다는 상대편에서 보이는 상식 이하의 편법을 보노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누가 숨어서 이 판을 이다지도 더러운 진흙탕 싸움을 만들고 있는 것인가. 누가 숨어서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순수한 열정을 이다지도 혹독하게 모독하고 있는 것인가. 그를 알기 때문에 내 슬픔은 더욱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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