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참 까다로운 그녀 본문
민예총 워크숍을 위한 사전 모임을 가졌다. 애초에는 계획에 없었던 후배 두 명이 함께 했다. 일정을 체크하고 준비물과 예상비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자리를 옮겨 저녁을 함께 했다. 이어 자연스레 술자리로 이어졌다. 늘 가는 술집을 찾았는데 우리 일행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내가 아는 선배 두 분이 먼저 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서로 안주를 교환하고 자리를 옮겨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유쾌한 자리였다. 한 시간 반 가량이 지났을 때 먼저 왔던 선배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의 술값까지 계산해주었다. 나와의 인간관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전에도 자주 자신들의 술값에 내 술값까지 얹어서 계산해주곤 했던 선배들이다. 나는 문밖까지 나가서 선배들을 배웅하며 고마움을 표하고 들어왔다.
그때였다. 여자 후배 하나가 갑자기 성을 내며 왜 선배들이 우리의 술값을 대신 계산하도록 내버려뒀냐며 나를 타박하기 시작했다. 맨 처음에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선배들이 후배의 술값을 내줄 수 있는 거 아니야? 이전에도 몇 번 그런 적이 있어."라고 대답을 했는데, 그 말을 들은 그녀는 더욱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었다. "우리도 돈이 있는데 왜 자기들이 맘대로 술값을 내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방치한 형도 문제가 많아요."라고 말을 할 때는 나를 비롯해 그 자리에 있던 나머지 일행들마저 황당한 표정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짜증이 난 나는 "나도 후배들의 술값을 내주기도 하고 그래. 그게 뭐가 그리 문제가 된단 말이지?"라고 되받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들이 말려서 간신히 진정이 되긴 했지만 도무지 나는 그녀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른 후배 하나가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와서는 "오늘은 자기가 술값을 내려고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선배가 내는 바람에 자존심이 상했나 봐요. 많이 취한 거 같아요. 선배님이 이해하세요."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확전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후배들게 표했다. 그녀는 담배를 피우고 들어와 "무례하게 굴어서 죄송합니다."라고 내게 사과를 했지만 자기가 내려고 했던 술값을 선배가 대신 내줬다는 것이 그리 화를 낼 만한 일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가 사람들을 아연하게 만든 건 이번 만이 아니었다. 술자리에서의 농담이나 지극히 개인적인 한 사람의 성향에 대해서도 지나치리만치 엄격하게 문제를 제기해 그녀와 상대방 간에 감정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얼마 전에도 그녀와 갈등을 벌이던 서너 명의 회원이 작가회의에서 탈퇴하기도 했다. 원칙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는 관례적으로 용인돼왔던 일들조차도 그녀에게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 것이었다. 자기 자시에게도 그토록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을 거라는 걸 믿고 싶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그녀의 그 대책없는 원칙주의(?)를 무척이나 짜증스러워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가 그녀는 몇 년 전 편집증과 우울증을 앓고 있어서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매일 소주 한 병을 마셔야만 잠이 들긴 했다. 그런 전사를 생각하면 무척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녀에 대한 연민을 느끼는 것과 인간관계 속에서 부담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자신의 원칙이 옳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속물과 무원칙한 인물들로 만들어 버리곤 한다. 그건 주변 동료들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신독'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지난한 일인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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