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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검열과 배제의 망령들 (02-28-화, 맑음) 본문

현실

검열과 배제의 망령들 (02-28-화, 맑음)

달빛사랑 2023. 2. 28. 20:28

불쾌한 기시감, 검열과 배제의 망령들

문계봉(시인)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자 핵심 가치이다. 특히 예술 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이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예술 창작은 존립할 수 없다. 자유를 억눌린 채 강요된 이념을 표현한 것은 예술이 아니라 생경한 선동이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이념과 세계관을 예술적 표현으로 일관되게 구현하는 것은 선동이 아니라 예술적 실천이다. 따라서 예술 표현은 예술가의 수만큼 다양한 경향이 있을 수 있다.

 

이때 각각의 경향은 서로 다른 상대의 경향을 비판할 수 있지만 비난해서는 안 된다. 한 작품의 미덕을 평가하는 데 있어 그 예술작품 속에 담긴 역사의식에 주목할 수도 있고 해당 작품의 미학적 측면에 주목할 수도 있다. 또한 작품의 사회문화적 의미에 주목할 수도 있고, 작품의 형식적, 구조적 측면에 주목할 수도 있다. 동시대의 문학장 안에서 각각의 작가들은 자신의 예술적 표현의 정당성을 강변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기도 한다. 그러한 논쟁이 거듭되는 과정에서 도출된 합리적 핵심들은 당대 예술의 핵심을 간직한 하나의 시대적 담론으로 자리 잡는다.

 

따라서 차이와 논쟁은 예술의 발전과 이론의 정식화를 위한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지 거부될 게 아니다. 심각한 문제는 차이와 논쟁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편향된 주장과 적대가 지배하는 검열과 배제의 현실일 뿐이다. 

 

부도덕한 권력은 예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의도적으로 현실을 왜곡해 적대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예술가들의 생생한 표현을 통해 자신들의 몽매와 부도덕, 부조리가 공개될까 두려워 항상 유사 예술가와 예술가의 탈을 쓴 모사가들을 양산한다. 다시 말해 표현의 자유를 허락하는 것은 자신들의 속내와 치욕스러운 문신을 백일하에 드러낼 수 있는 일이므로 그들은 모든 것을 꾸미고 모함하고 왜곡하고 부인한다. 하지만 진실한 예술가는 그러한 은폐와 거짓의 난장을 용인할 수 없으므로 권력의 거짓과 음모를 드러내는 과정을 하나의 예술적 형식으로 승화시키기도 한다. 이때 위기에 처한 권력은 다양한 폭력과 감시 기제들을 동원해 예술가를 억압하고 검열하고 배제하여 그들의 창작 의지를 훼손함으로써 한 사회의 예술과 예술가의 품위를 떨어뜨린다.

 

따라서 예술 표현의 자유를 위한 싸움은 언제나 권력과의 싸움을 동반한다. 물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기제는 권력만이 아니다. 당대의 통념과 사람들의 빗나간 욕망, 권력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유포한 왜곡된 정보들도 표현의 자유를 위협한다. 그러나 이 모든 층위의 억압 기제들에 모터와 기름을 제공하는 것은 당연히 부도덕한 권력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예술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방해받는다는 것은 권력의 부도덕함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이고 한편으로 권력의 두려움 역시 그만큼 크다는 방증일 것이다. 자신 없는 권력, 부도덕함이 드러나면 일시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사상누각의 권력은, 진실을 지향하고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자유로운 예술가와 예술 표현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때로 권력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공권력을 동원하기도 하는데,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를 물리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얼마나 천박한 것인가. 잠깐 주춤할 뿐 안으로 내연(內燃)하며 부당한 시대와 부도덕한 권력을 끝장내기 위해 더욱 크고 강한 불꽃을 준비하게 되는 것을, 멍청한 그들은 알지 못한다. 모르기 때문에 허튼짓을 반복하고 그 반복 속에서 애꿎은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이다.

 

작년 5월에 취임한 대통령은 ‘표현의 자유’를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라 언급하며 비판과 쓴소리에도 기꺼이 귀를 기울이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후 마주한 그의 행보는 무척이나 겉과 속이 다른, 황당한 상황들이었다. 그분은 고등학생의 현실풍자화에 경고를 내리기도 했고, 방미 중에는 비속어를 사용해 국격을 떨어뜨리고 그것을 보도한 기자들에게 토라져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거부하는 웃지 못할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그분에게 표현의 자유란 권력과 자신에게 우호적이면 용인하고 그렇지 않으면 검열하고 배제하는, 참으로 편의적인 선택적 자유일 뿐인 모양이다. 그분은 검찰 출신답게 현장에서 열일하는 많은 ‘아Q 검사’들을 거느리고 있고 그 ‘아Q들’은 필요에 따라 요리할 많은 정보를 독점하고 있다. 이 정보들은 ‘견강부회라는 레시피’로 언제든 권력의 치부를 가려주거나 정적의 축출에 활용될 것이다.

 

현 정권이 들어선 지 채 1년도 안 된 시점에 권위주의 시대에나 쟁론의 주제가 되었을 ‘표현의 자유’ 문제가 다시 화두로 떠오른다는 것 자체가 슬픈 일이다. 점점 정체성이 드러나기 시작한 이 정권에게 ‘도대체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라고 다시금 물어야 하는 웃픈(웃기면서 슬프다는 뜻의 신조어) 상황이 도래할 것 같은 예감에 자꾸만 마음이 불편해지는, 봄날 같지 않은 봄날에, 쓴다.

 

**3월 3일 금요일, <기호일보> 금요논단에 게재할 칼럼 초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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